Friday, June 10, 2011

한 성도님의 간증 (2011년 6월 5일)

-목회 칼럼 :
영혼을 위한 불타는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하나 들라며 이제부터 나는 주저 없이 금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금식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자복하고 용서를 구하는 특별한 영적 참회의 시간이었다. 물과 음식을 끊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며 자신의 탄식을 알리는 거룩한 행위였다. 금식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고, 사생결단의 각오를 불사하는 비장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에 수 많은 신앙의 성도들은 인생의 큰 위기를 맞이하거나 중요한 기도의 제목이 있을 때마다 이 금식의 시간을 갖었다.
내 삶에 있어서도 금식의 시간은 그런 중요한 결단의 시간으로 활용되었던 것 같다. 주님의 고난을 되새기는 고난주간에도, 교회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목회적인 과정에도, 성도들의 아픔과 고난 앞에에서도 금식의 시간을 자주 갖었던것 같다. 그런데 최근 한 성도님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주님이 기뻐하실 금식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주님을 만난 이후 그 성도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바라보며 불쌍히 여기는 이 전도의 마음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사랑하는 지인이 예수를 믿지 않고 자꾸 거부하며 냉대해져만 가자, 최후의 수단으로 금식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같이 금식하는 이분의 얼굴은 수척해질 수 밖에 없었고 우연히 이분의 얼굴을 보게 된 그 지인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무엇인데 저렇게까지 나를 위해 간절히 금식을하는가?” 이 생각은 그렇게도 닫혀 있던 지인의 마음을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결국 교회의 예배하는 자리까지 나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간증을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금식이 아니겠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8:6에서 이렇게 선포한다. “나의 기뻐하사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무엇이 흉악의 결박이며 멍에의 줄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는 것인가? 자기 안에 갇혀서 참된 자유와 기쁨도 모른체 절망을 체념하며 어떤 삶의 돌파구도 찾아볼 여력도 업는 자에게 진정한 기쁨과 평안의 능력이 있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소개하기 위해 애타는 심정으로 금식하며 저 인생에게 새로운 대안을 가르쳐 주기 위해 간구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금식이 아니겠는가? 한 영혼을 위해 사생결단하며 금식하는 그 간구앞에 안 열릴 마음이 어디 있으며 안 무너질 인생의 장벽이 어디있겠는가? 영혼을 향한 불타는 마음, 이것이 곧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마음일 것이다. 주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영혼을 위해 내 육체의 한계상황을 드리고 사생 결단하는 금식…. 이것이야 말로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참된 헌신일 것이다. ---------남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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