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29, 2012


'32살차' 박근혜 김정은 공통점, 전용 벤츠를…

[중앙일보] 입력 2012.12.29 00:18 / 수정 2012.12.29 09:57

선출 권력 박근혜 - 세습 권력 김정은, 정상회담 마주 앉을까

꿇어앉은 박근혜 남북의 차이는 최고지도자가 노인들을 대하는 모습에서도 크게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5일 서울 창신동 창일경로당에서 무릎을 꿇은 채 노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부친인 박 대통령께서 나라를 발전시킨 데 대해선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박근혜 의원의 표정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2002년 5월 13일 오후 7시 평양 북동부 대성구역의 백화원초대소.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한 시간 동안 밀담을 나눴다. 김 위원장은 “1·21 사건은 극단주의자들이 잘못 저지른 일이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은 죄를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김일성이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요원 31명을 남파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 했던 도발 사건에 대해 사실상의 사과를 전한 것이다. 박근혜·김정일 두 사람의 이날 만남은 남북한 냉전 대결을 이끌었던 박정희 대통령 딸과 김일성 주석 아들의 첫 대면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그로부터 꼭 10년 뒤, 박근혜 의원은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정일 위원장은 1년 전 불귀의 객이 됐지만 그의 아들 김정은이 자리를 대신했다. 이제 두 사람은 남북관계라는 파워게임을 펼쳐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박 당선인은 일단 김정은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후보 시절이던 지난달 5일 외교안보 구상을 밝히면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면 북한의 지도자와도 만나겠다”며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남한의 첫 여성 대통령과 북한 청년 지도자의 만남이 된다. 박 당선인이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28세의 김정은은 아들뻘이다. 32년 연하인 북한 최고 지도자가 정상회담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딸과 김일성 손자의 만남이란 상징적 의미도 있다.

 김정은이 아버지인 김정일이 아니라 할아버지 김일성의 통치술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를 통해 후계자로 추대되면서 공개석상에 등장한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비슷한 외모로 화제를 모았다. 북한도 “수령님(김일성)을 그대로 빼어닮은 분”이라고 선전한다. 30~40대 공산주의 혁명가 시절의 김일성처럼 인민복 차림에 옆머리를 짧게 밀어버린 스타일이다. 성형수술을 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풍채와 얼굴이 닮았다. 여기에 김일성식 연설 스타일과 손동작 등 제스처까지 선보였다.


 최고 권력자 아버지를 뒀다는 점 외에도 두 사람의 공통점은 적지 않다. 박 당선인은 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했고, 김정은은 10대에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에 다닌 조기 유학파다. 박 당선인은 22세 때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문세광의 총탄에 잃었고, 김정은은 20세에 생모 고영희를 유선암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박 당선인은 육 여사가 서거한 1974년 이후 5년 넘게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하며 국정 경험을 했다. 또한 대선 직후 박 당선인에게 최고급 방탄형 세단인 S600L 풀만가드가 제공되면서 두 사람 모두 메르세데스벤츠(김정은은 스포츠유틸리티인 GL63 AMG 애용)를 타게 됐다.

 박근혜·김정은 두 사람의 정상회담이 과연 실현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특히 지난 12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쏘아올린 뒤에는 비관적 견해가 높아졌다. 박 당선인의 대북정책 구상이 출발선에 서기 전부터 시련에 부닥쳤다는 말도 나온다. 북한의 로켓 발사를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행위로 간주하고 있는 미국 등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 강화를 추진 중이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 지도부가 여전히 김정은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순조롭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를 고립시키기 위한 국제 공조 분위기는 지속될 상황이라 박 당선인이 취임 초 맞이하게 될 첫 숙제가 로켓 문제가 될 공산이 크다.

 여기에 핵 실험 같은 추가 도발이 이어지면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물론 정상회담은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극단적으로는 전쟁이 치러지는 상황에서도 최고 지도자의 결단만 있다면 정상회담은 언제든 열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양반다리 김정은 반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9월 평양의 한 노동자 집을 방문해 양반다리로 앉아 있고 노인을 포함한 주민들은 모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박 당선인을 보는 평양 정권의 시선은 당혹감이 배어있는 듯하다는 게 관계당국의 분석이다. 기대와 예상을 빗나간 결과 때문이란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에게 야당이나 진보 세력의 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둔 보고서를 올렸던 노동당 대남 전략가들은 낭패를 봤을 것”이라며 “2007년 대선 직후 벌어진 북한 대남 라인의 대거 숙청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대선 기간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나름 공을 들였다. 2007년 대선 때 월 평균 52회이던 대선 개입 보도가 이번엔 140여 차례가 넘을 정도였다.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달 3일 “새누리당이 집권하면 이명박 정권 때와 똑같이 될 뿐 아니라 유신독재가 부활할 것”이라며 박 당선인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김정은이 책임자로 있는 국방위는 지난 9월 “대선 후보 박근혜년까지 북방한계선 고수 입장을 입에 올렸다”고 비난했다.

2002년 5월 북한을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평양 백화원 초대소 만찬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박 당선인에 대한 북한의 공세는 관행을 벗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을 직접 만난 ‘친견(親見) 인사’의 경우 극진한 예우를 받는다. 1989년 김일성과 만난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 씨는 물론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수령론에 따르면 김일성과 김정일은 오류를 모르는 절대적 존재다. 이 때문에 그들이 선택해 만난 인물이 비난을 받는다면 자칫 수령의 권위에 손상이 갈 수도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북한도 2002년 김정일 위원장 면담 보도에서 ‘박근혜 여사’라는 존칭을 썼다. 김정일은 박근혜 당시 의원을 위해 중국 베이징에 전용기를 보냈고, 3박4일간 국빈급 영빈관인 백화원초대소를 내줬다. 이산상봉 면회소 개설 등 민감한 제안에 동의해 줬고 판문점을 통한 육로 귀환도 승인했다.

북한이 이 같은 태도에서 돌변해 비난 포문을 본격적으로 연 것은 2007년 대선에서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부터 북한은 ‘유신 창녀’라는 거친 표현까지 써가며 비방을 가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유신 공주’ 등의 수식어를 써가며 박 후보를 몰아세웠다. 그만큼 대북 유화정책을 쓰는 정당과 후보의 당선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란 얘기다.

 관심을 끄는 건 대남 기구나 관영 선전매체의 이 같은 비난과 핵심 지도층의 박 당선인에 대한 인식은 온도차가 있다는 점이다. 대선 전 베이징에서 만난 북한 고위층 인사는 기자에게 “우린 박근혜가 된다 해도 나쁠 것 없다. 남북 모두 자손 정치를 하게 되면 지도자끼리 서로 통하게 되는 점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인사는 박 당선인에 대한 북한의 비난을 군부와 대남 기관의 충성 경쟁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당선인을 ‘자손 정치’란 표현으로 북한 김정은의 권력 세습과 슬쩍 한 틀에 엮어 넣으려는 것도 흥미롭다. 거친 비난을 퍼붓던 북한이 대선이 임박하면서 거명 비난을 자제하는 등 수위를 낮춘 점도 궁금한 대목이다. 지난 1일 조평통의 공개 질문장은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라는 호칭을 쓰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북남 수뇌분들’ 중 한 명에 포함시키는 등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사진=뉴시스
김정은이 박 당선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도 관심사다. 대선 과정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방을 퍼부었지만 이제는 ‘대통령 당선인’이란 실체와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후계수업 과정에서 김정일로부터 박 당선인에 대한 평가를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2002년 박 당선인의 방북 때 김정일과 한 시간 동안 나눈 단독면담과 이후 2시간 동안의 만찬 과정도 소상하게 파악했을 수 있다. 만찬 자리에는 고모부인 장성택(현 국방위 부위원장) 당시 노동당 제1부부장도 참석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후견 그룹의 주축을 이루는 장성택이 당시의 대화록이나 관련 자료를 보여주며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대비해 브리핑을 했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베일에 싸여있던 면담 내용을 통해 박 당선인의 대북 인식 등을 충분히 감지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사실 김정은은 호전적인 대남관을 종종 드러내왔다. 지난 1월 공개된 기록영화에서는 군가 악보에 “이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남진(南進)의 길을 가자”며 친필 격려문을 보냈 다. 김정일 사망 이후 첫 공개활동으로 제105 탱크사단을 방문한 점도 상징적이다. 이 부대는 6·25전쟁 당시 가장 먼저 서울에 진주해 중앙청에 인공기를 내건 정예부대다.

 집권 2년차를 맞는 김정은의 통치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도 남북관계의 변수가 될 수 있다. 김정일의 급작스러운 사망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최고사령관, 국방위 제1위원장, 노동당 제1비서 등 공직을 순차적으로 차지했다. 또 7월에는 아버지가 군부 과외교사로 지명한 이영호 총참모장을 전격 숙청하는 등 군부 장악에도 박차를 가했다. ‘불안정 속의 안정’이긴 하지만 권력 승계에는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숙청과 계급 강등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식 인사에 대한 간부층의 불안심리 확산과 만성적인 경제난 등은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로켓 도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대선 직후 박 당선인을 거명하지 않은 채 “남조선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고 짤막하게 보도한 이후 침묵하고 있다. 당분간 당선인 측의 대북정책 구도 짜기를 지켜보며 관망하겠다는 자세로 풀이된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듬해 4월 1일 노동신문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첫 비난을 퍼부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이 박 당선인에 대해 당장 유화적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비난 수위를 유지하면서 새 정부의 대북접근 수준을 테스트하려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은 18년간 남북 냉전대결의 리더이자 맞수였다. 1972년 10월 박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하자 두 달 뒤 김일성은 사회주의헌법을 통해 국가주석에 올랐다. 자주노선과 주체사상, 새마을운동과 천리마 노력 경쟁, 향토예비군 창설과 노농적위대 조직 등 사안마다 맞섰다.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얘기가 나왔고, 어떤 이들은 ‘적대적 공존(共存)’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체제 경쟁의 승자가 됐고, 패배한 김일성은 핵·미사일 개발과 폭압적 독재, 3대 세습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이제 한 사람의 딸은 아버지가 서거한 지 33년 만에 국민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다른 한 사람의 손자는 3대에 걸친 봉건적 왕위 세습 방식으로 20대 나이에 한반도의 절반을 상속받았다. 쟁취한 권력과 주어진 권력은 1년의 시간차를 두고 돛을 달았고, 조만간 교차점을 긋게 될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과 김정은의 대(代)를 이은 남북 간 애증의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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