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24, 2010

한 여름 밤의 회상

여름밤만 되면 고등부 시절의 설레면서 기다렸던 여름수련회가 생각난다. 교회의 수련회를 갈 때면 언제나 설레는 마음으로 밤잠을 설쳤다. 차나 기차 안에서뿐만 아니라 어쩌다 섬 지역을 갈 기화가 있어 조그만 통통배라도 타는 날이면 수련회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와 흥분으로 가득 찼었다. 도시에 살던 나에게 수련회는 자연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인 동시에 나를 잊고, 입시 지옥(우리 1.5세나 2세들을 모를 것이다)을 잊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수련회는 유일하게 어린 시절 나의 신앙을 하나님께 다짐하는 의미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늘 자연과 함께 지내는 지금의 미국 생활은 집을 떠나 멀리 가도 옛날 어린 시절의 수련회 기분만은 못한 것 같다. 수련회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거의 잠을 안 자도 좋았던 그 시절.... 짧게 끝나는 것이 늘 아쉬울 따름이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수련회 마지막 날은 영적으로 가장 충만한 시간이었다. 전도사님들의 뜨거운 설교와 밤새워 기도하는 우리의 열정이 한데 어우러지는 영성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우리 가운데 목사도 나오게 하였고, 선교사도 나오게 하였다. 그때 함께 했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들 있을까? 수련회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모두들 말이 없었다. 영적 체험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다가오는 입시의 부담 때문에 앞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걱정에 쌓이곤 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담과 걱정이 학생 시절을 지나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시간이 지나도 줄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와서도 이런 불안과 걱정은 계속되었다. 구체적인 어떤 일이 닥쳐진 것도 아닌데 앞날에 대한 막연한 걱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긴 휴가를 보내고 난 후에 닥치는 일에 대한 부담감처럼 어려움 없이 편안한 일상생활을 지내고 있을 때면 이런 부담감이 더 강하에 찾아온다. 이럴 때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터득한 나만의 해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일기 쓰는 일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일기를 쓸 때만큼은 인생을 관조할 수 있게 되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며 부족한 것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별로 일기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일기보다는 목적을 두고 글을 쓰는 일이 많기에 글쓰는 것 자체가 더 부담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지금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을 읽는다.
편안하고 즐거워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날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지 않으면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인가 보다. 왜냐하면 너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 계속되면 인생에 의미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편하고 기쁘게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곤고한 일 속에서 앞날을 생각하는 존재로 만드셨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의 의미를 찾는 시간을 따로 가져야 한다. 휴가 마지막 날 정도는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인생을 계획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이런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전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평안하고 즐거울 때마다 가끔씩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삶을 정돈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다. 그런 시간 중의 하나가 바로 고난이라는 시간이다. 고난은 하나님 앞에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며, 하나님이 없이는 전혀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은 더 크고 강한 자로 우리를 만드시기 위해 고난의 과정을 겪게 하시는 것이다. 고난은 성도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통과 의례와도 같은 것이다. 이것을 겪어야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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