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6, 2011

우리교회 정진철 집사님의 NASDAQ Opening Bell 에서의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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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s Day에 추천하고 싶은 선물

목회칼럼 2011년 5월 8일

중국의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서경의 홍범편에 의하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복을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이렇게 5가지로 나누고 있다. 수(壽) 라는 것은 오래사는 것을 의미하며 부(富)라는 것은 많은 재산을 소유해 넉넉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강녕(康寧)은 몸과 마음 모두가 편안하고 건강한 것을 뜻하며 유호덕(攸好德)은 남에게 덕을 베풀어 선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종명(考終命)은 질병없이 살다가 천수를 다하는 것을 말한다.
이 복에 대한 염원 때문인지 특별히 한국사람들에게 있어서 복에 대한 애착과 소유욕은 그 어느 민족보다 남다른 것 같다. 한해를 시작하는 첫날부터 우리는 복을 빌고 복을 전하는 것을 미풍양속으로 여겼다. 매일의 삶 속에서 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면 그 무엇이든지 했던 것 같다. 머리 맡에 베고 자는 베게의 끝자락에도, 매일마다 덮는 이불의 중앙에도, 입고 다니는 옷고름에도 복(福)자를 새겨 넣으며 복을 구하는 자신들의 간절함을 표현했던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살아생전 부모에게 이 오복을 마련해 드리기 위해 무단히도 애를 썼다. 조석으로 문안인사를 드리며 부모가 하루의 삶 속에서 육체의 건강과 마음의 편안함 누리시도록 보살펴 드렸으며 마지막 남은 생애를 질병없이 천수를 누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했다. 혹이나 이런 것을 다해 드리지 못한체 부모가 먼저 떠나시기라도 했다면 자식들은 상복을 풀지 않고 3년동안 부모의 산소에서 곡을 하며 슬퍼하기까지 하는 일들이 우리 조상들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번 생각해 볼 것은, 과연 오복을 마련해 드리는 자식의 이런 정성이과연 살아생전 부모를 진정으로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가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자식들의 돌봄을 받아야 할 시간이 곧 오게 된다. 그 때에 우리는 과연 무엇때문에 기뻐하고 즐거하게 되는가? 무병장수하는 매일의 삶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이유일까? 언젠가는 이렇게 왔다가 가는 인생의 끝에 아무런 소망도 없고 인생 끝에 무엇이 있을지 볼 수 없는 삶이라면 아무리 오복이 아니라 오천복이 있어도 그런 삶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오복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이 있음을 말씀한다. 이 복은 영적인 복이며 영원한 복이다. 일시적으로 한번 있다가 사라지는 그런 물리적이고 한시적인 복이 아니다. 소유했어도 여전히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세상의 복, 물질의 복이 아니라 한번 소유하면 영원토록 즐거워하며 그 복으로 인하여 이전에 알지 못했던 놀라운 가치와 의미와 소망을 누리게 되는 그런 복이다. 이 복을 누리는 자들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늘 행복해 한다. 이 복을 얻은 자는 육체의 약함과 강함에 요동하지 않고 늘 평강과 기쁨을 소유한다. 이 복을 소유한자들은 그 처한 곳이 어디든지 하늘의 행복을 전하며 당장 이 자리에서 내 생명이 끝나도 그것을 가장 영광스러워 한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Mother’s Day에 아직도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어떤 선물을 해드려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이가 있다면, 한가지 선물을 추천하고 싶다. 바로 하늘의 신령한 복, 곧 영원한 기쁨과 평강이라는 선물이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에도 전혀 기쁨을 얻지 못하시는 부모님에게 이보다 더 큰 Mother’s Day 선물이 있을까? ---남성수 목사

“Birther 들이여….”

목회칼럼 2011년 5월1일

인간 탐욕의 그 끝은 어디인가? 그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인가? 탐욕은 소유에서부터 일어났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에 대한 소유욕은 탐욕으로 이어졌고 결국 인류 최대의 불상사를 낳는 사건이 되어 버렸다. 이후에 인간은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시작된 인간 탐욕의 본성을 내버리기는 커녕 틈만 나면 꺼내어 다른 이를 공격하며 자신의 배를 채우는 추한 모습을 일관되어 보여 왔다.
2011년에 그 추한 모습이 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에서 지금 재현되고 있다. 남북전쟁으로 흑인노예제도는 폐지 되었는지 모르지만, 1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인간의 탐욕 깊숙한 곳에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고 싶은 본성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쟁취하고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탐욕은, 기득권자가 소외계층을,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부한자가 가난한 자를 하나의 인격자로 존중하지 못하는 인간하대의 습성으로 노출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게 지음 받았다는 미국헌법의 기초를 비아냥 거리듯 미국 사회의 기득권층은 여전히 사람의 피부색깔이나 출신 성분을 가지고 상대를 업신여기는 일들을 버젓이 행하고 있다.
최근에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Birther들(Birther란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가 미국이 아닌 케냐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자들로서 흑인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지칭함)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지금 노골적으로 흑인차별을 할 수 없으니 흑인 대통령의 출신 성분을 가지고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출신성분을 언론의 도마위에 올려놓고 근거없는 비난전을 벌이는 소수 정치인들의 작태는 그야 말로 21세기 새로운 형태의 인간하대의 전형이다. 대통령으로 이미 선출되어 그 출신성분이나 그의 능력을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입증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인기와 여론 몰이를 위해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의 한탕주의는 과연 이것이 21세기 세계 최강국의 나라, 세계 최고의 민주국가라 자부하는 미국이 맞는가 싶을 정도이다.

미국의 희망은 정치나 경제에 있지 않다. 미국의 희망은 그 옛날 목숨을 걸고 이땅에서 참된 인간의 행복과 기쁨을 찾으려 했던 청교도들의 정신에 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죄성을 인정하고 안락과 배부름을 거부한체, 척박한 미국땅에 몸을 옮겨와, 추위와 고난 속에서도 오직 살길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뿐임을 고백했던 그 겸손함 속에는 어떤 차별과 어떤 하대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미국의 희망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만을 구할 때 내가 가진것과 다른이가 가진 것을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피해갈 수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기에 감격할 뿐이다. 내가 가진 실력, 명예, 학문, 배경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된 선물임을 인정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야 이 땅의 차별과 무시는 해결된다.
미국의 Birther들이여 이 땅을 다시금 차별과 무시와 억압의 1860년대로 되돌리지 말고, 지금 이루어진 풍요와 강대함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의 결과로 인정하여 그 어떤 나라도 넘볼 수 없는 진정한 청교도의 나라, 희망과 꿈의 나라를 만드는 참된 애국자가 되보지 않겠는가? -----남성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