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29, 2012


'32살차' 박근혜 김정은 공통점, 전용 벤츠를…

[중앙일보] 입력 2012.12.29 00:18 / 수정 2012.12.29 09:57

선출 권력 박근혜 - 세습 권력 김정은, 정상회담 마주 앉을까

꿇어앉은 박근혜 남북의 차이는 최고지도자가 노인들을 대하는 모습에서도 크게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5일 서울 창신동 창일경로당에서 무릎을 꿇은 채 노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부친인 박 대통령께서 나라를 발전시킨 데 대해선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박근혜 의원의 표정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2002년 5월 13일 오후 7시 평양 북동부 대성구역의 백화원초대소.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한 시간 동안 밀담을 나눴다. 김 위원장은 “1·21 사건은 극단주의자들이 잘못 저지른 일이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은 죄를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김일성이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요원 31명을 남파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 했던 도발 사건에 대해 사실상의 사과를 전한 것이다. 박근혜·김정일 두 사람의 이날 만남은 남북한 냉전 대결을 이끌었던 박정희 대통령 딸과 김일성 주석 아들의 첫 대면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그로부터 꼭 10년 뒤, 박근혜 의원은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정일 위원장은 1년 전 불귀의 객이 됐지만 그의 아들 김정은이 자리를 대신했다. 이제 두 사람은 남북관계라는 파워게임을 펼쳐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박 당선인은 일단 김정은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후보 시절이던 지난달 5일 외교안보 구상을 밝히면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면 북한의 지도자와도 만나겠다”며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남한의 첫 여성 대통령과 북한 청년 지도자의 만남이 된다. 박 당선인이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28세의 김정은은 아들뻘이다. 32년 연하인 북한 최고 지도자가 정상회담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딸과 김일성 손자의 만남이란 상징적 의미도 있다.

 김정은이 아버지인 김정일이 아니라 할아버지 김일성의 통치술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를 통해 후계자로 추대되면서 공개석상에 등장한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비슷한 외모로 화제를 모았다. 북한도 “수령님(김일성)을 그대로 빼어닮은 분”이라고 선전한다. 30~40대 공산주의 혁명가 시절의 김일성처럼 인민복 차림에 옆머리를 짧게 밀어버린 스타일이다. 성형수술을 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풍채와 얼굴이 닮았다. 여기에 김일성식 연설 스타일과 손동작 등 제스처까지 선보였다.


 최고 권력자 아버지를 뒀다는 점 외에도 두 사람의 공통점은 적지 않다. 박 당선인은 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했고, 김정은은 10대에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에 다닌 조기 유학파다. 박 당선인은 22세 때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문세광의 총탄에 잃었고, 김정은은 20세에 생모 고영희를 유선암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박 당선인은 육 여사가 서거한 1974년 이후 5년 넘게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하며 국정 경험을 했다. 또한 대선 직후 박 당선인에게 최고급 방탄형 세단인 S600L 풀만가드가 제공되면서 두 사람 모두 메르세데스벤츠(김정은은 스포츠유틸리티인 GL63 AMG 애용)를 타게 됐다.

 박근혜·김정은 두 사람의 정상회담이 과연 실현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특히 지난 12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쏘아올린 뒤에는 비관적 견해가 높아졌다. 박 당선인의 대북정책 구상이 출발선에 서기 전부터 시련에 부닥쳤다는 말도 나온다. 북한의 로켓 발사를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행위로 간주하고 있는 미국 등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 강화를 추진 중이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 지도부가 여전히 김정은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순조롭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를 고립시키기 위한 국제 공조 분위기는 지속될 상황이라 박 당선인이 취임 초 맞이하게 될 첫 숙제가 로켓 문제가 될 공산이 크다.

 여기에 핵 실험 같은 추가 도발이 이어지면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물론 정상회담은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극단적으로는 전쟁이 치러지는 상황에서도 최고 지도자의 결단만 있다면 정상회담은 언제든 열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양반다리 김정은 반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9월 평양의 한 노동자 집을 방문해 양반다리로 앉아 있고 노인을 포함한 주민들은 모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박 당선인을 보는 평양 정권의 시선은 당혹감이 배어있는 듯하다는 게 관계당국의 분석이다. 기대와 예상을 빗나간 결과 때문이란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에게 야당이나 진보 세력의 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둔 보고서를 올렸던 노동당 대남 전략가들은 낭패를 봤을 것”이라며 “2007년 대선 직후 벌어진 북한 대남 라인의 대거 숙청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대선 기간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나름 공을 들였다. 2007년 대선 때 월 평균 52회이던 대선 개입 보도가 이번엔 140여 차례가 넘을 정도였다.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달 3일 “새누리당이 집권하면 이명박 정권 때와 똑같이 될 뿐 아니라 유신독재가 부활할 것”이라며 박 당선인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김정은이 책임자로 있는 국방위는 지난 9월 “대선 후보 박근혜년까지 북방한계선 고수 입장을 입에 올렸다”고 비난했다.

2002년 5월 북한을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평양 백화원 초대소 만찬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박 당선인에 대한 북한의 공세는 관행을 벗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을 직접 만난 ‘친견(親見) 인사’의 경우 극진한 예우를 받는다. 1989년 김일성과 만난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 씨는 물론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수령론에 따르면 김일성과 김정일은 오류를 모르는 절대적 존재다. 이 때문에 그들이 선택해 만난 인물이 비난을 받는다면 자칫 수령의 권위에 손상이 갈 수도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북한도 2002년 김정일 위원장 면담 보도에서 ‘박근혜 여사’라는 존칭을 썼다. 김정일은 박근혜 당시 의원을 위해 중국 베이징에 전용기를 보냈고, 3박4일간 국빈급 영빈관인 백화원초대소를 내줬다. 이산상봉 면회소 개설 등 민감한 제안에 동의해 줬고 판문점을 통한 육로 귀환도 승인했다.

북한이 이 같은 태도에서 돌변해 비난 포문을 본격적으로 연 것은 2007년 대선에서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부터 북한은 ‘유신 창녀’라는 거친 표현까지 써가며 비방을 가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유신 공주’ 등의 수식어를 써가며 박 후보를 몰아세웠다. 그만큼 대북 유화정책을 쓰는 정당과 후보의 당선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란 얘기다.

 관심을 끄는 건 대남 기구나 관영 선전매체의 이 같은 비난과 핵심 지도층의 박 당선인에 대한 인식은 온도차가 있다는 점이다. 대선 전 베이징에서 만난 북한 고위층 인사는 기자에게 “우린 박근혜가 된다 해도 나쁠 것 없다. 남북 모두 자손 정치를 하게 되면 지도자끼리 서로 통하게 되는 점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인사는 박 당선인에 대한 북한의 비난을 군부와 대남 기관의 충성 경쟁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당선인을 ‘자손 정치’란 표현으로 북한 김정은의 권력 세습과 슬쩍 한 틀에 엮어 넣으려는 것도 흥미롭다. 거친 비난을 퍼붓던 북한이 대선이 임박하면서 거명 비난을 자제하는 등 수위를 낮춘 점도 궁금한 대목이다. 지난 1일 조평통의 공개 질문장은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라는 호칭을 쓰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북남 수뇌분들’ 중 한 명에 포함시키는 등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사진=뉴시스
김정은이 박 당선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도 관심사다. 대선 과정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방을 퍼부었지만 이제는 ‘대통령 당선인’이란 실체와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후계수업 과정에서 김정일로부터 박 당선인에 대한 평가를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2002년 박 당선인의 방북 때 김정일과 한 시간 동안 나눈 단독면담과 이후 2시간 동안의 만찬 과정도 소상하게 파악했을 수 있다. 만찬 자리에는 고모부인 장성택(현 국방위 부위원장) 당시 노동당 제1부부장도 참석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후견 그룹의 주축을 이루는 장성택이 당시의 대화록이나 관련 자료를 보여주며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대비해 브리핑을 했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베일에 싸여있던 면담 내용을 통해 박 당선인의 대북 인식 등을 충분히 감지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사실 김정은은 호전적인 대남관을 종종 드러내왔다. 지난 1월 공개된 기록영화에서는 군가 악보에 “이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남진(南進)의 길을 가자”며 친필 격려문을 보냈 다. 김정일 사망 이후 첫 공개활동으로 제105 탱크사단을 방문한 점도 상징적이다. 이 부대는 6·25전쟁 당시 가장 먼저 서울에 진주해 중앙청에 인공기를 내건 정예부대다.

 집권 2년차를 맞는 김정은의 통치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도 남북관계의 변수가 될 수 있다. 김정일의 급작스러운 사망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최고사령관, 국방위 제1위원장, 노동당 제1비서 등 공직을 순차적으로 차지했다. 또 7월에는 아버지가 군부 과외교사로 지명한 이영호 총참모장을 전격 숙청하는 등 군부 장악에도 박차를 가했다. ‘불안정 속의 안정’이긴 하지만 권력 승계에는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숙청과 계급 강등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식 인사에 대한 간부층의 불안심리 확산과 만성적인 경제난 등은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로켓 도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대선 직후 박 당선인을 거명하지 않은 채 “남조선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고 짤막하게 보도한 이후 침묵하고 있다. 당분간 당선인 측의 대북정책 구도 짜기를 지켜보며 관망하겠다는 자세로 풀이된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듬해 4월 1일 노동신문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첫 비난을 퍼부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이 박 당선인에 대해 당장 유화적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비난 수위를 유지하면서 새 정부의 대북접근 수준을 테스트하려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은 18년간 남북 냉전대결의 리더이자 맞수였다. 1972년 10월 박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하자 두 달 뒤 김일성은 사회주의헌법을 통해 국가주석에 올랐다. 자주노선과 주체사상, 새마을운동과 천리마 노력 경쟁, 향토예비군 창설과 노농적위대 조직 등 사안마다 맞섰다.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얘기가 나왔고, 어떤 이들은 ‘적대적 공존(共存)’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체제 경쟁의 승자가 됐고, 패배한 김일성은 핵·미사일 개발과 폭압적 독재, 3대 세습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이제 한 사람의 딸은 아버지가 서거한 지 33년 만에 국민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다른 한 사람의 손자는 3대에 걸친 봉건적 왕위 세습 방식으로 20대 나이에 한반도의 절반을 상속받았다. 쟁취한 권력과 주어진 권력은 1년의 시간차를 두고 돛을 달았고, 조만간 교차점을 긋게 될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과 김정은의 대(代)를 이은 남북 간 애증의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박근혜의 인사스타일


'배신 트라우마' 박근혜, 인사 추천받으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2.12.30 04:11 / 수정 2012.12.30 06:54

박근혜·박정희 용인술 비교해보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998년 정치권 입문 후 단 한 번도 보좌진을 교체하지 않았다. 27일 임명한 대통령직인수위원 상당수는 대선 선대위 출신이다. 대선 선대위 실무진의 상당수는 2007년 대선 경선 때도 호흡을 맞췄다.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은 2004년 인연을 맺은 박 당선인에게 세 번 부름을 받았다. 당 대표 비서실장, 대선 선대위 국민행복추진위 부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이다. 향후 청와대나 내각에 진출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남덕우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4년11개월간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4년여간 경제정책을 총괄했다. 곧 다시 1년 가까이 경제수석을 맡았다. 태완선 전 부총리는 대한석탄공사 사장, 건설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연이어 지냈다. 박 전 대통령은 사람을 ‘쓰고 또 쓰는’ 스타일이었다.

#박 당선인은 한국조세연구원장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를 지낸 ‘경제통’ 유일호 의원을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18대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옆자리에 앉긴 했지만 유 의원은 본래 박근혜계가 아니었고 당선인과 별 연고가 없었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유 의원에게 “정책 마인드가 있지 않으냐”며 비서실장을 맡겼다.
박 전 대통령은 3선 개헌안이 통과돼 뜻대로 국정 운영을 할 수 있게 된 69년 10월 김정렴 당시 상공부 장관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5·16 직후 통화 개혁에 참여하긴 했지만 한국은행·재무부 출신인 김 장관은 박 전 대통령과 별 연고가 없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라며 비서실장을 맡겼다. 김 비서실장은 이후 9년2개월간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해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렸다.

박 전 대통령, 수첩에 적힌 1000명 집중 관리
부전여전(父傳女傳)인가. 박 당선인의 용인술은 얼핏 보면 부친의 용인술을 닮았다. 큰 실책을 하지 않는 한 쓰던 사람을 또 기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실무에 밝은 전문가를 선호하는 점도 부녀가 비슷하다. 박 전 대통령은 5·16 직후엔 군 출신을 부처 장관과 권력기관장에 배치했다. 하지만 정권이 안정되자 권력집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는 혁명주체를 배제하고 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자들을 중용했다(김호진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의 대통령과 리더십).

박 당선인도 유일호 의원뿐 아니라 김광두·안종범·강석훈 등 교수 출신 경제통을 가까이 두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향후 인선과 관련해 25일 “전문성 위주로 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인자를 두지 않는 것도 부녀가 일치한다. 박 당선인은 2010년 “친박에는 좌장(座長)이 없다”고 선언했다. ‘좌장’으로 평가되던 김무성 전 의원을 겨냥한 말이었다. 이후 최경환 의원이 중용되기도 했지만 누구든 2인자로 올라서려는 순간 박 당선인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게 친박 내부의 정설이다.

공인된 2인자가 없다 보니 친박 인사들은 박 당선인의 인정을 받으려 경쟁한다.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가 경제민주화를 놓고 서로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낸 것도 경쟁구도에서 나타난 풍경이다.

박 전 대통령도 특정인에게 힘을 실어 주지 않고 경합을 시켰다.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분리 지배)’로 불린 용인술이다. 유신 전엔 김형욱·이후락, 유신 이후엔 차지철·김재규의 경쟁구도였다. 김종필(JP) 전 총리도 한때 후계자로 불렸으나 박 전 대통령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으로 견제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자금 관리도 ‘4자 회담’(김형욱·이후락·김성곤·장기영) 틀로 서로 견제하게 했다. 당 재정 담당이던 김성곤은 정치자금을 국회의원들에게 보태 주며 권한을 행사하려 했지만 곧 박 전 대통령이 교체해 꿈은 무산됐다(김병문 안동대 교수, 그들이 한국의 대통령이다 참조).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와 입지를 위협할 만한 2인자의 출현을 철저히 배제했다.

박 당선인은 민주당 출신 인사들과 인혁당 사건 피해자 등을 국민대통합위원회에 임명하며 ‘대통합 인선’을 강조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도 여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스타일이었다. 본래 민주당 정권 사람이던 태완선 전 부총리는 “민주당 정권에서 장관을 했기 때문에 석탄공사 사장을 시킬 때만 해도 정치적 제스처라 생각했다. 그런데 건설부 장관, 부총리까지 시키니 ‘정말 국가 건설에 필요하다고 여겨 기용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어 자꾸 고개가 숙여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최두선을 총리로 기용한 것도 파격이었다. 한때 동아일보 사장으로 박 전 대통령의 여순사건 관련 사실을 호외로 발행할 정도로 반대쪽에 섰던 인물이어서다. 동아일보 기자를 지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그런 사람을 과감히 총리에 앉혔다는 건 박정희가 여야 없이 인재 등용 폭이 넓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회고한다.

남덕우 전 총리도 교수 시절 정부에 비판적이었지만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박 전 대통령은 “남 교수, 그동안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부터 맛 좀 봐”라고 했다.

사람을 쓸 때 집요한 것도 부녀가 유사하다. 박 전 대통령은 3선 개헌 당시 개헌에 반대하던 김택수 의원을 수차례 불러 개헌 사령탑인 원내총무에 임명하는 데 성공했다. 박 당선인도 삼고초려를 마다 않는다. 인요한 인수위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은 본래 박 당선인이 지난해 말 비대위원직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올해 선대위 구성 때 다시 불렀고, 인수위에도 기용했다.

부녀 모두 사람을 치밀하게 관리했다. 박 당선인은 친박 인사의 생일을 기억하고 챙겨 준다. 티셔츠나 ‘계영배(술이 일정 한도에 차오르면 새어 나가게 만든 잔)’를 선물하기도 한다. 박 당선인은 이준석 전 비대위원을 야학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피자를 돌렸다. 박 당선인은 민생현장 방문 중 마주치는 인물도 잊지 않고 기억했다 연락한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내쳤던 인사도 챙겼다. 물러난 지 3개월이 지나면 전화를 하고, 또 3개월 뒤엔 측근을 보내 인사하고, 6개월 더 지나면 청와대로 불러 식사하며 촌지를 줬다. 강창성 보안사령관을 좌천시킨 뒤 밤 12시에 불러 “임자가 쫓겨난 줄 알고 무시하는 놈들이 있으면 얘기해 봐. 내가 혼을 내줄 테니까”라고 한 적도 있다. 안동대 김병문(행정학) 교수는 “박정희는 작은 수첩에 1000명가량의 명단을 적어 놓고 수시로 어떻게 지내는지, 밥은 먹고 사는지 알아봤는데 반성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다시 발탁해 쓰기도 했다”고 전한다.

박 당선인은 부친 서거 뒤에도 박 전 대통령의 사람들을 챙겼다고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 당선인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받았다는 6억원 중 상당액은 부친을 따랐던 사람들을 챙기는 데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증 작업, 보좌진 3인방과 최외출이 핵심
부녀가 다른 점도 있다. 박 당선인은 인사 보안을 유달리 중시한다. 참모나 원로그룹에서 추천안을 받긴 하지만 검증 실무작업은 보좌진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과 최외출 영남대 교수 정도에게만 맡기고, 최종 결정은 본인이 직접 내리는 폐쇄적 구조다. 인물 평가도 본인이 직접 한다. 과거 해외 순방 때마다 이명박계 인사나 중립 인사를 동반한 것도 직접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권영세 전 종합상황실장이 그런 평가에서 통과된 경우다.

보안 때문에 당사자조차 인선 내용을 발표 직전 아는 경우가 많다. 한광옥 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도 발표 하루 전에야 박 당선인으로부터 맡아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당사자는 이 사실을 언론에 흘려선 안 된다. 한 박근혜계 인사는 “공식 발표 전 비공개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이고 그 정도는 지켜야 한다고 당선인이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주변에 인선을 과감하게 맡겼다. 5·16 뒤엔 세 가지 기준(그래픽 참조)만 제시하고 유원식 당시 대령에게 사람을 찾게 했다. 정부 부처에 기획조정실이 창설될 땐 이한빈 당시 재무부 차관이 제안한 인사명단을 바로 다음 날 송요찬 내각 수반이 발표했다. 김정렴 전 비서실장의 회고록(아, 박정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총리와 개각을 상의했고, 차관 이하 인선은 장관 의향에 따랐다.

이런 아버지와 달리 박 당선인이 직접 인선을 챙기는 건 ‘배신 트라우마’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부친이 측근 김재규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고, 부친 사후 주변 사람들이 등을 돌렸던 경험 때문이란 거다. 박 당선인은 참모들이 인사를 추천하면 “믿을 만한 분인가요”부터 묻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박 당선인은 용의주도한 성격인 데다 청와대 시절 정보를 다루는 훈련을 받았고, 18년간 혼자 생활하며 고독한 결단을 내리는 데 익숙해졌다”며 “나홀로 판단에 대한 노하우와 자신감이 있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봤다. 그는 “비밀 인선을 하면 로비를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검증이 부족한 단점이 있는 만큼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당선인이 명문가 2, 3세들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일호 비서실장은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의 아들이고, 윤주경 인수위 대통합위 부위원장은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다. 인요한 대통합위 부위원장은 5대째 한국에서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을 해 온 가문 출신이다. 김종인 전 행복추진위원장은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이고, 김무성 전 총괄선대본부장은 민주당 민의원 원내총무와 초대 주일공사를 지낸 김용주 전남방직 회장의 아들이다.

Friday, December 28, 2012

학생들을위한 창의력 개발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인용 
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6/2012092601985_2.html

스토리텔링을 하려면 먼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스펙보다 스토리가 중요해지는 입시의 시대에는 ‘창의적 체험활동’이 교과과정만큼 중요하다. 1학기가 바뀐 교과과정 및 학급생활에 적응하는 시기였다면 2학기는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 때다. ‘창의적 체험’이란 결국 얼마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느냐로 판가름되니까.

2학기 과제, 창의적으로 체험하기포트폴리오(portfolio), 서류가방 혹은 자료수집철을 뜻한다. 이 서류에는 주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나 관련 활동이 요약돼 담긴다. 금융업계에서는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하는 것을 포트폴리오라 부른다. 입학사정관제가 만들어낸 유행어, 바로 이 포트폴리오다.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에는 앞의 두 가지 뜻이 모두 담긴다. 일단 자신의 이력과 실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그 활동은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닐수록 좋다.

현재 포스텍(포항공과대학)과 카이스트는 정원 전부를 입학사정관제로 뽑고 있다. 서울대는 정원의 약 80%를 이 과정으로 뽑을 예정이다. 상위권 대학의 입시방식은 전체 전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포트폴리오는 벼락치기가 불가능한 과목이다. 고등학생이라면 수능에 집중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해보는 게 낫다. 초등학생이라면 다르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준비할 여유가 있다. 1학기가 새 학년 교과과정을 익히고 새로 바뀐 학급에 적응하는 시기(적응활동)라면, 2학기는 창의적 체험활동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차곡차곡 채워가야 하는 시기(체험활동)다.

지금은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시대라는 말을 창안한 이어령 석좌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뛰면 1등은 한 명이지만, 365도로 뛰면 1등이 365명 나올 수 있다”고. 성적순으로 커트라인을 만드는 게 전자라면, 각자의 이야기를 중시하는 입학사정관제는 후자에 가깝다. 문제는, 입학사정관제 역시 한 방향으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모두가 같은 경험치를 가지고 비슷한 이력을 늘어놓는다면, 다시 한 줄 세우기가 될 수밖에 없다.

365도 방향으로 달리는 창의적 체험활동 길잡이

1 Step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공부하는 실력은 아이가 가진 재능 중 일부다. 미국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의 지능이 있다는 ‘다중지능이론’을 발표했다. 인간은 적어도 8가지 지능을 가지고 있고, 이 중 공부와 관련된 지능은 언어지능과 수리지능 정도다. 언어지능이 뛰어나면 국어, 사회 등의 과목에서 유리하고 수리과학지능이 뛰어나면 수학이나 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이는 총 8개 지능 중 2개에 불과하다. 음악지능, 시각미술지능, 인간이해지능, 자연친화지능, 운동지능, 자기성찰지능도 똑같이 중요하다.

내 아이가 가진 마음 지능
하워드 가드너의 ‘마음의 틀’ (참고도서 《10대 너의 배움에 주인이 되어라》)

“진정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영리한가보다 어떻게 영리한가에 있다.” 
-하워드 가드너

인간이해지능타인의 욕구나 필요를 알아내는 능력. 남의 마음을 잘 아는 능력. 누군가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아도 그 어려움을 금방 알아차리고 도와준다. 남의 마음을 잘 읽기 때문에 장사도 잘하고,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자연친화지능동물이나 식물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호스 위스퍼러(horse whisperer)>라는 영화를 보면 말이 며칠째 밥을 먹지 않자 주인공이 말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물과 대화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는 이런 자연친화지능이 뛰어난 사람이다.

자기성찰지능역경이 찾아와도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다. 간디나 처칠과 같은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불굴의 의지력, 자기를 돌아보고 닦아나갈 수 있는 능력, 원칙에 따라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힘 등을 뜻한다.

2 Step 인성이 실력이다, 나와 남을 돕는 봉사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중 봉사활동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학마다 사회봉사활동 특별전형이 생길 정도다. 봉사활동의 이로움은 아이의 인격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선한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협동하는 중에 멤버십과 리더십을 기를 수도 있다. 봉사활동도 이전보다 세분화되면서, 소질에 따라 활동할 수 있는 이른바 ‘재능기부’ 형태의 봉사가 많아지고 있다.

1단계 → 주변부터 둘러보기《청소년 자원봉사 어떻게 할까》의 저자는 봉사활동의 기본 소양을 ‘나와 남을 바꾸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바꾸어보기 시작하면, 이해하지 못해 울컥했던 일들이 사라지고 세상사람 모두가 친구처럼 느껴진다. 봉사활동의 고수들이 봉사를 할수록 재미있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와 남을 바꾸어보면서 편견과 차별로 흐려진 눈을 깨끗이 씻어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 사람의 입장이 되기 힘들다면 그를 내 가족으로 바꾸어보자. 양로원의 어르신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로, 장애아동을 내 사촌동생으로, 그렇게 보면 어렵지 않게 누군가를 돌볼 수 있게 된다.

2단계 → 소질 발견 인성 쑥쑥, 재능기부 봉사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는 것이 아이들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베네수엘라에 있다. 그 나라는 남미 최대의 산유국이지만 극심한 빈부격차로 전 국민의 30%가 빈민이다. 그런데 거리의 총과 마약에 노출되어 있던 빈민층 아이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나눠줬다. 음악교육 시스템 ‘엘 시스테마(El Sistema)’의 시작이다. 차고나 창고를 개조해 솔로보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중심으로 음악을 교육했다.

거리의 아이들은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꼈고 악기를 통해 단체생활의 질서와 규율, 책임과 의무, 배려와 헌신을 배우게 됐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현재 전국에 221개의 음악학교와 500개의 오케스트라에서 30만 명의 어린이, 청소년이 음악을 배우고 있다. 1975년부터 지금까지 37년간 엘 시스테마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자기 앞에 놓인 불행과 싸워나간다면 누구에게나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준 것이다.

한국형 엘 시스테마,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한국형 엘 시스테마를 꿈꾸며 한국시립교향악단이 서울시, 구로구와 협약을 맺고 구로구 저소득층 아이들을 포함한 초등학교 3학년 30명을 선발해 무료로 첼로와 바이올린을 지도했다. 지역밀착형 어린이 예술교육 프로그램, 일명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다. 구로구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된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는 도봉구에서도 시작됐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연주만 시켰는데 이화여대 산학협력단과 연계해 연구논문도 발표했다. 현재는 용산구, 금천구까지 확대되어 운영 중이다.

3단계 → 공부해서 남 주기, 봉사활동‘무서운 10대, 초등학생 공부방에 원정 간 이유는?’ 일간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무서운 10대들이 초등학생 공부방에 우르르 몰려간 이유는, 다름 아닌 공부방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다. 서울 용산구 이촌2동 공부방에는 용강중학교 학생들이 토요일마다 토요 봉사활동을 한다. 방과 후 수업 중 ‘공부한 것을 가치 있게 써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가장 최근까지 초등학교 교과과정을 공부한 건 중학생, 가장 친근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공부방 아이들은 이들을 ‘꿈나무 샘’이라고 부른다. 20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모인다. 선생님 인원도 그 정도여서 1:1로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을 가르친다. 꿈나무 샘들은 “1:1로 가르치는 것도 힘든데 30여 명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선생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역지사지 정신으로 수업시간에 훨씬 집중하게 됐다고.

3 Step 이제 만들어볼까요. 열여섯에 다큐멘터리 감독이 된 재강이
영상을 좋아하는 아이는 많지만, 영상을 만드는 아이는 드물다. 미디어 영상세대는 영상기기를 이전보다 훨씬 자주, 쉽게 접한다. 주머니 속에 있는 스마트폰만 꺼내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장르는 영화든, 다큐멘터리든 좋다. 아이가 관심을 갖는 분야가 있다면 일단 만들어보라고 권하자. 대략의 시놉시스부터 완성된 영상까지 만들다 보면,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이미 많다.

1단계 → 주제 정하기“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걸 만들고 싶어?”라는 질문부터 시작한다. 현재 서울 영상고등학교에 다니는 채재강 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환경단체 봉사에 참여했던 경험을 살려 자연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2단계 → 관련 서적 읽기재강 군은 자연다큐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는 사람》은 사막으로 변해가는 몽골에 나무를 심어온 한 여성의 이야기로, 봉사만 할 때는 알지 못했던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3단계 → 체험하기다음 단계는 직접 해보기. 재강 군은 자연봉사를 확장해 직접 몽골에 갈 기회를 얻었다. 관련 활동을 꾸준히 한 덕분이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은 이때 그려졌다.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어떻게 찍을지 등이 구체화된 순간이었다.

4단계 → Ready, action!<몽골의 사막화 방지에 관한 영상>. 이 8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데 80시간이 걸렸다. 미리 만들어놓은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촬영에 들어갔지만 현장은 생각과 달랐다. 수많은 장면 중 이야기가 될 만한 한 컷을 골라내는 편집 및 후반작업은 그중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

보는 만큼 보인다. 추천영화! 참고도서 《청소년을 위한 추천영화 77편》
환경에 관심이 있다면나무를 심은 사람 / 아름다운 비행 / 북극의 나누크 / 스피릿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베어 / 펭귄-위대한 모험  씨비스킷 / 듀마

휴먼드라마의 정수사운드 오브 뮤직 / 투게더 / 천국의 아이들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인생은 아름다워 / 집으로 가는 길 아이엠 샘 / 나의 왼발 / 어둠 속의 댄서 / 말아톤 / 어바웃 슈미트 / 포레스트 검프

영화로 역사읽기쉰들러 리스트 / 태극기 휘날리며 / 킹덤 오브 헤븐 / 킬링 필드 / 뉘른베르크 / 인도차이나 / 늑대와 함께 춤을  인생 / 피아니스트 / 닥터 지바고 / 글래디에이터 / 벤허

시야 넓히기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 존 큐 / 파워 오브 원 / 아무도 모른다 / 초콜렛 / 아이리스 / 토끼 울타리 / 시티 오브 조이 / 아버지의 이름으로 / 자전거 도둑 / 에린 브로코비치 / 시티 라이트 / 모던 타임스 / 쇼생크 탈출 / 이키루

환상의 세계뮬란/ 터크 에버래스팅 / 에버 애프터 / 작은 아씨들 / 제인 에어 / A.I / E.T / 아일랜드 / 가위손

위인을 만나다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일 포스티노 / 샤인 / 서편제  아마데우스 / 불멸의 연인 / 간디 / 말콤 X / 쿤둔 / 닥터 코르작

네가 주인공빌리 엘리어트 / 로빙화 / 북경자전거 / 정복자 펠레 / 죽은 시인의 사회 / 책상 서랍 속의 동화 / 코러스 / 엠퍼러스 클럽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지난해 서울국제청소년 영화제에서 ‘발칙한 시선상’을 수상한 <아기염소를 구해라>의 류고 나카무라 감독(17)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상물을 만들었다. 집에 있던 홈비디오 카메라로 2분짜리, 4분짜리 영상을 만들어본 게 시작이었다. 소꿉놀이처럼 동네 친구들과 즐긴 놀이였다. 누구는 카메라맨을, 누구는 배우를 맡았다. 번갈아 역할을 바꿔가면서 호러, 코미디, 패러디 등의 영상을 만들었다.

6학년 때는 컴퓨터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편집을 시작했다. 작품의 완성도도 더불어 높아졌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동네 주민센터에 찾아가 “내 작품을 틀어 달라”고 요청했다. 센터의 허락이 떨어지자 포스터를 직접 만들어 전단을 돌렸다. 첫 상영 때는 100여 명의 주민이 모였고, 이런 식의 시사회를 10여 번 했다. 
류고가 길을 열어온 방식은 비슷하다. 방송장비가 보고 싶어 방송국을 직접 찾아간 적도 있다. 촬영장과 편집실을 둘러보면서 관계자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친해지기도 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부르지 않은 곳도 달려갔다.

본격적으로 영화인(?)이 된 건, 2009년 ‘오키나와’에서 열린 ‘단편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되면서다. 오키나와 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염소를 떠올렸다. 오키나와에는 염소를 기르는 집도 많고, 염소고기도 많이 먹는다. 시나리오 <염소의 산책(Goat Walking)>이 당선되면서, 오키나와 기업의 지원을 받아 <아기염소를 구해라>라는 1시간 40분짜리 영화도 완성했다. 배우를 비롯한 스태프진은 모두 프로, 대부분 성인이었고 감독이자 작가인 류고만 청소년이었다.

감독 데뷔는 여기에서
대한민국 세계청소년영화제대전에서 개최하는 영화제다. www.dima.or.kr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서울특별시에서 주관하는 영화제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 중 부산, 전주, 부천 다음으로 큰 규모다. 60개국 청소년이 영화를 출품하고 그중 40개국의 작품이 상영된다.  www.siyff.com 

아시아국제청소년 영화제www.kiyff.com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부산광역시에서 개최하는 비경쟁 국제어린이영화제다.www.biki.or.kr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이 되어라북극 지방에 사는 펭귄의 습성에는 다음과 같은 게 있다. 떼를 지어 몰려온 펭귄의 무리는 빙산 끝에 다다르면 머뭇거린다. 뒤뚱거리며 함께 걸어올 때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다가 바다에 뛰어들어야 되는 순간이 오면 눈치를 본다.

망망대해는 먹이가 있는 곳이지만, 감수해야 할 위험도 넘실거린다. 한 마리 펭귄이 눈을 질끈 감고 바다에 뛰어들면 뒤이어 다른 펭귄들도 일제히 따라온다. 영어로 ‘First Penguin’은 ‘도전하는 사람’을 뜻한다. 당장은 무리 속에서 돌출되지 않고 뭉쳐 있는 게 안전해 보이지만, 일단 뛰어내리고 나면 흥미진진한 ‘Under the Sea’를 보게 될 것이다. 365도 방향으로 뛰는 차세대 인재도 일단은 뛰어야 한다. 아이는 그 끝에서 입학사정관제용 포트폴리오의 완성보다 더 뜻깊은 ‘나만의 이야기’를 갖게 될 것이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취재 유슬기 기자 | 사진 김남용


한자문화와 기마군단 -조갑제 기고문


조갑제 기자의 하버드 연수보고(4) - 한자문화와 기마군단(3)
   우리는 달리고 싶다
 
  1240
41년 겨울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가 이끄는 15만의 기마군단은 러시아를 겨울에 쳐들어갔다. 허허벌판에서 휘몰아치는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을 어떻게 견디어냈을까 하는 수수께끼는 지금도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경이이다. 난방장치가 있었을 리가 없고 방한복이 발달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자동차도 없던 시절이었다. 서양을 대표하는 두 군사적 천재인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실패했던 러시아 동계(冬季)작전을 말과 인간의 육체력에만 의존한 몽골 기마군단은 어떻게 해냈던가. 기자는 몽골 사람들이 가졌던 샤머니즘的 자연관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아니 대대손손(代代孫孫) 자연과 대화하며 벗하여 생존하고 생활할 수 있는 슬기를 축적한 몽골족은 자연에 대한 공포심이 없었을 것이다. 자연의 숨결을 읽을 수 있는 눈과 자연의 맥박을 재고 자연의 노여움을 피할 수 있는 요령을 체득(體得)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몽골 사람들의 시력은 4.0 수준이라고 한다. 비가 쏟아지는 속에서 한데에서 잠도 자고 말의 입김이 고드름이 되어버리는 추위 속에서 어린아이들은, 몸통에서 배어난 땀이 서리처럼 얼어붙어 백마로 변한 말을 달리며 논다. 몽골족은 자연을 친구처럼, 가축을 가족처럼 생각하면서 수 천년을 살아오다가 보니까 혹독한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몽골족으로서의 특성이 나타난 것을 약 2만년으로 잡는다면 몽골 고원을 떠나 반도로 들어왔던 한민족은 중국의 한자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한 15백년 전까지는 몽골 인종으로 살아온 것이다. 우리가 산악국가에 갇혀 살면서 유교의 규제 속에서 순종하는 것 같았지만 15백년이란 기간은 우리의 핏줄과 본능과 심장 속에 녹아있는 이 몽골적인 야성을 씻어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음을 요사이 우리의 모습들을 보면서 절감하고 있다. 야성이란 말의 다른 표현은 거칠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거친 몸가짐은 엄청난 돌파력을 내기도, 질서를 파괴하기도 한다. 야성이 가진 높은 에너지를 어떻게 쓰는가에 의해서 창조의 동력원이 되기도 파괴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천의무봉하고 활달하면서 지구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본능적 충동을 간직한 한민족은 산악국가와 유교의 행동윤리에 갇혀 살면서 몽골적 야성을 눌려 있는 용수철처럼 가슴 깊은 곳에 숨겨놓고 있었다. 
 
  
해방 뒤에 서구 자본주의가 이 땅에 들어와서 유교의 억눌림을 약화시키고 李承晩과 朴正熙에 의해서 주도된 근대화 작업이 결정적으로 용수철을 누르고 있던 돌덩어리를 치워버렸다. 용수철은 다시 튀어오르고 민족의 야성이 잠에서 깨어났다. 인류사에서 찾기 힘든 한 민족 단위의 대폭발과 대각성 시대에 우리는 활동공간을 세계로 잡게 되었다. 달리고 싶은 한국인들은 드넓은 무대를 필요로 한다. 
 
  
이런 공간만 주어지면 우리의 단점은 강점으로 전환된다.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픈 질투심은 사촌이 논을 샀으니까 나는 배가 아프다, 그러니 나는 아파트를 사서 사촌이 배가 아프도록 해야겠다는 오기와 경쟁심으로 바뀐다. 좁은 산악국가에서 아옹다옹하면서 지지고 볶고 했던 삶 속에서 터득한 투지와 생존력과 요령을 넓고 넓은 세계무대에서 한껏 활용하다가 보니 놀라버린 잠재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신천지 북한
 
  
야성의 한국인에게는 끊임없이 넓은 공간을, 영어로 말하자면 뉴 프론티어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정치가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도전할 변경이 막혀버리고 야성을 터뜨릴 배출구가 사라지면 한국인의 극성은 내부로 지향하게 되고 그 결과는 우리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자주 보게 되는 궁중암투극인 것이다. 지난 50여 년간 우리 지도자들은 대체로 한국인들에게 이 활동무대를 만들어주는 데 성공했다. 李承晩의 親美정책은 똑똑한 한국인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朴正熙의 무역입국 정책은 우리 기업인들이 세계시장을 무대로 하여 세계적 기업과 경쟁하도록 몰아붙였다. 월남파병과 중동 건설시장 진출은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기를 펴고 살 수 있도록 했다. 그런 무대는 나라 안에서도 만들어졌다. 새마을운동, 중화학공업 건설, 자주국방 건설, 서울올림픽, 이 서울올림픽을 이용하여 추진한 북방정책은 우리 민족의 야성을 소화하고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무대였다. 
 
  
金泳三 대통령 시절에 우리는 민족의 새로운 무대 공간을 발견하는 데 실패하였다. 다행히 金宇中 대우 회장이 선도한 세계경영으로 해서 기업인들이 앞장서서 징기즈칸의 기마군단이 달려갔던 길, 기자가 몽골벨트라고 이름 붙인 유라시아의 심장부로 뻗어나가고 있다. 남북통일도 한국인의 활동공간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달리 보이게 된다. 요사이 유행하는 통일비용은 계산법이 근본에서 틀리고 있다. 지출부문만 계산하여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통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25백만의 인력과 약 13만㎢의 땅은 왜 계산에 넣지 않는가. 이것을 계산에 넣는다면 富의 차원에서는 엄청난 이득이 되는 것이다. 통일 후 북한 주민들과 월남한 사람들을 잘 설득하여 토지 사유(私有)를 포기하게 한 다음 북한의 전지역을 국유화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북한에다가 대한민국의 이상향을 건설할 수가 있다. 소극작인 차원에서 말하는, 남한 수준에 따라오는 북한의 재건이 아닌 아예 無에서 출발하여 21세기의 선진한국이 지향하는 제도와 시설을 가진 신천지를 북한 땅에다가 건설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영국의 청교도가 영국보다 더 좋은 나라를 신대륙에서 건설했듯이 서울 사람들이 강북보다 더 놓은 강남을 건설했듯이 포화상태의 남한보다도 더 멋진 나라를 북한의 황무지에서 건설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는 북한이 철저하게 망할 것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북한체제의 붕괴는 북한이 가진 거의 모든 생산시설을 고철로 만들 것이다. 북한이 가진 교육제도와 사회간접자본도 싹 허물고 다시 짓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철저한 붕괴는 그 만큼 엄청난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런 新북한건설은 대한민국의 개조이면서 동시에 선진 조국의 창건인 것이다. 이런 창조를 위해서는 철저한 파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다행히 북한은 스스로 붕괴함으로써 우리가 애써 파괴하고 청소할 필요를 덜어줄 것이다. 북한에 대한 과감한 건설사업은 북한을 흡수통일한 바탕 위에서 가능하지 어중간한 타협식 통일로는 달성할 수가 없다. 
 
  
북한을 흡수하여 통일한다는 것은 몽골족으로서의 활동공간을 되찾는다는 민족사적 의미가 있다. [북한을 넘어서 북방으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좁은 국토에 몰려 사는 7천만의 맹렬한 민족은 불가피하게 만주 원동(遠東)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이른바 몽골벨트 지대로 넘쳐나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북방 초원지역이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무대가 되는 것이다. 징기즈칸의 힘은 기마군단에서 나왔지만 한민족의 힘은 경제력과 야성에서 나올 것이다. 몽골은 남한의 약 16배나 되는 면적을 갖고 있는데 인구는 대구市 정도인 250만 명이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희박한 나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과 여러 가지로 상호 보완할 점이 많을 것이다. 우리 기업인들 중에는 한국 몽골 경제공동체를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몽골에 우리가 집중적인 지원을 할 경우에 몽골 인구가 워낙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도 대단할 것이다.
 
  
 일당 백
 
  
특수한 양국 관계를 만들어놓고 이 나라를 교두보로 삼아 유라시아의 심장부로 뻗어가자는 구상이 요사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미 약 6천명의 몽골인들이 한국에서 취업하여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모습이나 행동거지가 우리와 워낙 같아서 입만 열지 않으면 한국 사람과 구별이 안된다. 3시간 남짓한 비행거리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가 있다. 몽골과의 특수관계는 한국인들의 공간개념에 새 지평을 열고 민족에너지의 배출에 새 활로를 틔워줄 것이다. 그것은 또 우리가 일류국가를 만들어갈 때 근사한 상상력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은 한자문화의 논리성과 몽골인종의 야성적 氣를 다같이 받아들여 갖고 있다. 한자와 몽골 기마군단은 둘 다 세계사에서 일류를 창조했던 위대한 능력의 원천이다. 理로 상징되는 한자문화와 氣로 상징되는 몽골문화에서 일류의 원리를 추상(抽象)해낼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이 원리를 오늘날의 상황에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일류국가 일류국민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기자는 이러한 화두(話頭)를 가지고 하버드의 도서관을 뒤지고 다녔다. 13세기에 징기즈칸의 몽골 기마군단이 고려(高麗)에서 헝가리에 이르는 문명세계의 거의 전부를 정복했을 때 몽골본토의 인구는 1백만에 불과했으나 점령지의 인구는 약 1억이었다. [일당 백]의 정복과 통치가 어떻게 가능했느냐 하는 데 대해서 서양 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1927년에 영국의 전략사상가 리델 하트가 쓴 [위대한 지휘관들을 벗긴다](Captains Unveiled)라는 책을 하버드의 와이드너 도서관 한 구석에서 찾아냈다. 그 첫 장이 징기즈칸과 그의 휘하 장군 스부데이를 다루고 있었다. 스부데이는 징기즈칸의 손자인 바투를 모시고 러시아와 유럽을 원정했던 용장이다.
 
  
 간편성의 철학
 
  
이 장()의 결론에서 저자(著者)는 몽골 기마군단 조직의 간편성(Simplicity)을 승리의 근본으로 꼽았다. 몽골군단은 보급부대가 따로 없는 전원 기병이었다. 기병 한 사람이 말을 45마리씩 몰고 다니면서 짐을 나르는 데뿐 아니라 비상식량이나 물통(말의 피를 빨아마셨다)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느린 보급부대가 따라다니지 않으면 전투부대의 이동 속도는 엄청 빨라진다. 나폴레옹의 유명한 공식에 따르면 <전투력=무장력×기동성>이다. 몽골군단은 전원(全員) 기병체제 덕분에 농경민족 군대보다 45배나 빨랐다.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서 몽골군단은 갑옷도 가볍게 만들었다. 
 
  
당시 유럽의 기마전법은 중무장이었을 뿐 아니라 보병과 연계된 조직이었다. 성격이 다른 이런 두 조직을 지휘하는 것은 기병 단일(單一) 조직보다도 복잡하다. 인간이든 조직이든 복잡하면 기동성이 떨어지게 돼 있다. 기자가 헝가리에 가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중세 유럽 기사들의 갑옷 무게는 약 40㎏이었고 말에 덮어씌운 갑주까지 보태면 1백㎏을 넘었다. 넘어지면 혼자서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영화에선 근사하게 보이지만 이런 로보캅 같은 중무장은 결국 죽기 싫다는 방어적인 심리를 반영한다. 복잡한 규정을 많이 만들어 철갑처럼 자신을 둘러싸는 것은 무사안일을 추구하는 관료 조직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중무장한 유럽 기사들에 대하여 몽골 기마군단의 고전적 전법은 2백∼3m 쯤의 거리를 두고 활로써 집중사격을 하여 혼란에 빠뜨린 다음 돌격하여 요절을 내는 것이었다. 몽골군단은 또 퇴각을 위장하여 유럽기병들을 유인, 분산시킨 다음 삽시간에 재집결하여 분산된 적을 각개 격파하는 전법(戰法)도 즐겼다. 이것은 기동성에서 앞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리델 하트는 몽골군단의 全員 기병제를 참고하여 영국도 보병에서 독립된 순수한 기갑군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책을 통해서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 것은 히틀러의 장군들이었다. 독일 기갑군단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데리안은 [나는 리델 하트의 제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드골 대령도 독립기갑군단의 창설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2차 세계대전의 초장에서 독일이 전격전으로써 연전연승한 것은 탱크들을 보병사단에 분산시켜 놓지 않고서 한 군데에 집중시켜 간편하고 단순한 기갑군단 조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편 손가락이 아닌 불끈 쥔 주먹을 만들었다는 얘기이다. 이 발상의 근본이 간편성(Simplicity)인 것이다. 리델 하트에 따르면 기동성은 간편성에서 나오고 기동성은 중무장보다도 더 안전한 방법이란 것이다. , 빠르면 산다는 뜻이다. 
 
  
지난 1월 말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조셉 L 보우 교수의 강의를 들었더니 이 간편성의 전략이 기업에 그대로 응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하고 있는 경영자를 꼽으라면 늘 만장일치로 지명되는 사람은 제너럴 일렉트릭(GE) 그룹의 잭 웰치 회장이다. GE의 한해 매출액은 8백억 달러로 세계 78위권의 제조회사이지만 주식의 시장가치를 기준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이다. 1981년 이후 회장직을 맡고 있는 웰치 회장은 이런 경영철학을 밝히고 있었다. 
 
  [
우리는 신속하려면 (조직이나 경영지침이) 간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장의 각주(脚注)가 붙은 경영지침을 누가 따르겠습니까. 간편하지 않으면 빨라질 수 없고 빨라지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엔지니어에게 간편성이란 간결하면서도 기능이 우수한 디자인을 뜻합니다. 영업인들에게는 이 간편성의 원칙이 투명한 거래를 의미합니다. 생산현장에서는 모든 작업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작업과정을,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쉽게 말하고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또 [자신 없는 경영자들일수록 복잡한 것을 만들어낸다]면서 [겁이 많고 불안한 관리자들은 두꺼운 계획서와 슬라이드가 있어야 안심을 하는데 그 내용은 하나마나한 것들뿐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속성(Speed)은 간편성(Simplicity)에서 우러나오지만 이 간편성은 자신감(Self-Confidence)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런 자신감은 관료주의의 충복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다. 직위가 아니라 진정한 성취에서 보람을 찾으려 하는 사람,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의 주변, 상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사람, 그런 다음 대담하게 행동하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조직과 인간관계의) 간편성을 창조하는 자신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웰치는 이런 성공의 3S(Simplicity, Speed, Self-Confidence) 조건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직경영에 적용하는가. [능력의 한계를 벗어날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맡은 경영진은 가장 능률적이다. 자질구레한 데 신경 쓰고 참견하여 부하들을 귀찮게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사무실 근무자는 현장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현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보고는 사무실에서 현장으로 향해야지 거꾸로 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옛날에는 몇 년 걸리던 투자결정을 이제는 며칠만에 해치우고 있다]
 
  
 먹물 먹은 사람들에 대한 경멸
 
  
웰치의 경영철학과 大宇그룹 金宇中 회장의 그것은 매우 비슷하다. 미국 언론이 金회장을 [20세기의 징기즈칸]이라 부르고 있는 것도 정확한 시각이다. 자신감(Self-Confidence)-간편성(Simplicity)-신속성(Speed) 3S 공식에서 몽골인종과 자신감의 문제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버드 옌칭 도서관의 어두컴컴한 서고(書庫)에서 찾아낸 [위험한 변경(The Perilous Frontier)]이 그 해답을 안고 있었다. 북방 유목민족 전문학자 토마스 J 바필드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이 기마유목민족들은 가장 발달된 정착문명인 중국과 인접하여 살면서도 중화적 문화와 이념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속으로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경멸했다. 돔의 천장 같은 광활한 하늘 아래에서 말젖과 말고기를 먹으면서 천막에서 나고 죽고 전쟁과 모험을 동경하는 자신들의 삶이 농경민족보다도 더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목축생활이 유지될 수 있었고 이에 기초한 기마군단의 우세도 계속될 수 있었다] 
 
  
몽골 사람들보다도 더 유식한 한국인과 월남인들은 중화적(中華的) 사상과 제도를 받아들여 문화적으로 중국화되었지만 몽골사람들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뒤떨어졌어도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켜갔다. 고려사(高麗史)에는 몽골 장군 흔도가 장군 김방경(金方慶)에게 한 이런 말이 실려 있다. 
 
  [
내가 보건대 고려 사람들은 모두 글도 알고 불교를 믿는 것이 한족(漢族)과 유사한데 매양 우리를 멸시하면서 {몽골 사람들은 살육만 일삼으니 하늘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다}라고들 한다. 그러나 하늘이 우리에게 살육하는 풍속을 준 것이기 때문에 하늘의 뜻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에 불과하니 하늘은 그것을 죄로 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 대들이 몽골 사람들에게 굴복하게 된 까닭이다] 
 
  
먹물 먹은 사람들에 대한 무사(武士)들의 경멸과 [우리 식]에 대한 자부심을 담고 있는 흔도의 이 오기서린 일갈은 몽골 기마군단의 파괴력이 자라난 정신적 토양을 보여주고 있다. 몽골 사람들은 싸움을 잘하는 戰士들이면서도 자부심과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건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는 뜻이다. 전쟁 기술만 가지고는 세계를 정복할 수도 없고 그 세계를 다스릴 수도 없다.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진정한 힘은 이런 주체성에 근거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면 징기즈칸의 교훈을 잊게 된다.
 
  
 벨벳 장갑을 낀 주먹
 
  13
세기의 몽골 기마군단과 20세기의 GE(General Electric)가 똑같은 원리에 의해서 성공했다는 것은 이 3S의 요소 안에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어떤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대와 기업처럼 효율성을 중시하는 조직에 유효한 것으로 판명된 이 원리를 어떻게 해석하고 응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는다. 다만 기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3S 중에서도 간편성(Simplicity)이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라는 점이다. 간편한 복장, 간편한 인간관계, 간편한 삶의 방식, 간편한 언동, 간편한 의식(儀式), 간편한 식사, 간편한 서류, 간편한 조직, 간편한 공정(工程), 간편한 디자인, 간편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직과 국가는 일류국가가 될 소질을 갖고 있다는 얘기이다. 
 
  
일류국가 미국에 사는 일류국민 미국인의 삶은 간편하다. 신발을 벗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고 식사는 햄버거로 때우며 인간관계는 번잡하지 않고 감정 정리도 끊고 맺는 것이 칼과 같다. 동양인이 보기에는 너무 매정한 것 같아 보인다. 미국인들은 동양인들의 복잡하고 끈끈한 인간관계가 낭비적이고 非능률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인간관계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한국은 간편하게 사는 몽골식 방식과 복잡하게 사는 중국식 방식을 다 같이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것이 우리의 강점이다. 어느 한 쪽에만 쏠리면 우리는 2류국가로 머물 수밖에 없다. 몽골적인 것은 주로 인간의 기적(氣的)인 면을 상징한다. 상무정신, 신바람, 상업, 건설, 행동력, 관용, 경쟁, 기동성, 야성, 미래지향, 제도보다는 자연스러운 상태에 대한 동경(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모자를 비뚜루 쓰기를 좋아하고 담배도 꼬나물기를 좋아하며 파격하는 행위를 존경하고 규격적인 것에 대한 생래적 거부감을 보인다) 같은 정신상태가 그것이다. 
 
  
한자문화는 理的인 것들을 상징한다. 논리, 관념, 도덕, 과거지향, 문민, 지성, 폐쇄적, 정태적인 현상들이다. 우리 민족사에서 이 두 가지 요소를 일류 요리사처럼 절묘하게 배합하여 일류국가를 빚어낸 것은 통일신라였고 지금은 두 번째 호기, 즉 다시 한 번 일류국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때는 한자문화가 들어왔지만 아직 그 영향력이 압도적이지 않을 때였고 몽골적인 전통, 즉 야성이 살아 꿈틀대고 있을 때였기에 理와 氣의 균형적 배합이 가능했었다. 
 
  
지금은 지난 15백년 동안 너무 강하게 우리 민족의 체질을 지배했던 한자-유교-중국문화의 영향이 퇴조하고 있는 때이기 때문에 그런 균형적 배합이 가능한 것이다. 국가나 인간이나 한 길밖에 모르면 외곬수가 되어 말라버리든지 부러지기 쉽다. 북한, 스파르타, 고구려 같은 나라가 그랬고 중국에선 武力은 모르고 문화만 알았던 송()나라가 그랬다. 로마, 베니스, 영국, 미국, 중국의 한당(漢唐), 통일신라는 개방과 자주, 군사력과 문화력, 내륙적인 것과 해양적인 것, 지성과 야성, 엄격과 관용 등 상반되는 두 가지 요소들을 생동감 있게 조화시켜서 일류국가가 되었다. 우단(羽緞) 장갑을 긴 주먹 같은 나라가 일류국가인 것이다.
 
  
 政治의 위대성
 
  
몽골적인 재료와 한자문화적인 재료를 벌려놓고 이들을 뒤섞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인이다. 이런 말이 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보통사람,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기업인,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정치인, 이 말은 정치인들을 폄하하려고 만든 것이지만 실은 정치라는 일의 엄숙하고 위대한 본질을 설명해주고 있다. 정치란 것은 [보통사람들을 모아서 인간이 해서는 안되는 일도 감수하면서 이 범인(凡人)들을 이끎으로써 결국에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행위가 정치인 것이다. 그럴려면 몸은 진흙투성이가 되더라도 혼은 순수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인의 혼이 순수한지 않은지를 검증하는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돈을 얼마나 받았는가보다는 구차한 변명을 하는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김유신(金庾信), 김방경(金方慶), 이순신(李舜臣),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의 사전에는 변명이 없다. 
 
  
朴正熙가 남긴 유명한 두 마디 말 {내가 죽거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난 괜찮아}에는 변명과 불평이 없다. 
 
  
李舜臣이 총을 맞고 남긴 마지막 말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에도 자신에 대한 이기적인 계산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말들과 朴正熙와 닮았다는 이인제(李仁濟)씨의 말들을 비교하면 인간의 크기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지도층에서 변명이 많은 사회에서는 규칙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으며 따라서 일류국가가 되기도 어렵다. 변명을 많이 하는 인간은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