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시대 … 다시 대한민국
[중앙일보] 입력 2013.01.01 00:03 / 수정 2013.01.01 00:03
이어령 본사 고문
가위바위보 삼항 순환구조의 아시아 모델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앞으로 아시아 지역에 통합된 국가가 생겨날 경우 일본과 중국이 그 중심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그때의 수도는 베이징도, 도쿄도 아닌 서울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정감록 같은 예언이 아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2050년 구매력 평가(PPP) 베이스의 1인당 GDP에서 미국을 100으로 할 때 한국은 105에 다다르고 일본은 58로 후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5년 뒤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과 맞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2010년 인간개발 지수(HDI)에서도 일본은 한 단계 떨어진 10위이고, 한국은 무려 14단계가 오른 11위였다. 중국은 향상되긴 했으나 아직 18위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단순한 숫자놀이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등장으로 중국·일본의 이항 대립구조가 가위바위보의 삼항 순환구조로 바뀌게 되리라는 점이다. 서로 물고 물리는 가위바위보의 게임 상태에서는 누구도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없게 된다. 그것은 무역구조에서처럼 한국은 중국에서, 중국은 일본에서, 그리고 일본은 한국에서 각자 흑자를 내고 있는 상생의 순환 모델 같은 것이다. 독식은 없다. G2의 중국, G7의 일본, G20의 한국처럼 피라미드 구조로 된 아시아가 아니다. 그것은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이 아시아로 읽히는 동그라미다.
대통합은 문화 원리의 소프트 파워로
아시아의 새 지도자 가운데 한국 초유의 여성 대통령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손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다. 한국이 당면한 다섯 가지 위협 요소를 추려 보면 ① 북한 변수 ② 저출산에 의한 잠재 성장률 저하 ③ 구조적인 내수 취약성 ④ 비정규 고용 증가 등 분배상의 양극화 현상 확대 ⑤ 소득 불안정에 의한 가계부채 증가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을 풀어가려면 양극으로 갈린 국민들을 통합하고, 그 갈등과 상처를 보듬어 안는 모성애적 사랑이 필요하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폐해와 사회주의의 환상”, 그리고 “사회주의의 폐해와 자본주의의 환상”을 넘어서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세계가 놀란 한국의 산업화는 자유경쟁의 경제 원리에 의해 이뤄낸 번영이었으며, 반면에 남들이 칭찬하는 민주화의 평등사회는 정치원리에 의해 피 흘려 쟁취한 전리품이었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등의 두 이념이 노출되고 그 모순이 충돌을 일으킬 때 사회의 모든 현상에 균열이 가고 양극화로 분열되는 비극을 낳게 된다. 그래서 프랑스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자유와 평등의 모순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제3의 문화 원리인 우애(fraternit )가 그 해답이 된다.
산업화의 땀, 민주화의 피를 용해하는 생명화의 눈물이 필요하게 된다. 한류 현상에서 보듯 한국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는 중국과 일본을 능가할 수 없었지만 문화의 소통과 생명력, 그리고 그 공감의 힘에서는 싸이의 말춤처럼 10억 명 이상의 세계인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어 온 것이 가부장적 남성들의 하드 파워였다면 이제 그것에 사랑과 생명을 불어넣는 소프트 파워는 새로운 여성 대통령이 해야 할 몫이다. 영토 분쟁과 내셔널리즘에 발목을 잡혀 동트는 아침 해를 바라보지 못할 때 그들의 손을 잡아 수천 년 동안 한·중·일 3국이 공유해 온 수퍼밈(문화유전자)을 함께 배우는 슬기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서구문명이 풀지 못한 레룸노바룸의 숙제를 함께 풀어가는, 2013년 아시아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