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보면 태어날 때부터 동굴 벽에 비쳐진 자신의 그림자만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들은 손과 발이 묶여 있은 체 한번도 자신의 비쳐진 동굴 벽 외에는 쳐다본 적도 없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굴 밖을 나가본 적도 없다. 이 사람들에게 실제의 삶은 벽에 그려지는 그림자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림자가 진짜일 뿐이다. 이들 중에 한 사람이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동굴 밖을 나가는 기회를 얻게 된다. 밖을 나서 보니 평생에 처음 보는 아름다운 자연과 신선한 공기 그리고 밝게 비치는 태양 빛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밖의 세상에 그만 넋을 잃고 만다. 이처럼 아름답고 좋은 세상이 있을까! 마침내 그는 결심을 하게 된다. 자신이 살고 있던 동굴 속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이들에게 동굴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아름답고 밝은 세상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다시 동굴로 들어간다. 동굴 속에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나무와 물과 동물과 태양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을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을 구경하러 나가자고 제안을 한다. 이 사람은 모두가 자신의 말에 따라 나올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동굴 속에 있던 사람들은 전혀 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말을 터무니 없는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고 자신들이 이제껏 살았던 삶의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게 된다. 동굴 밖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는 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굴에 비춰지는 자신들의 그림자가 가장 확실한 것이고 자신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들에게 있는 참 진짜는 여전히 동굴 벽에 비쳐진 그림자일 뿐이다.
진짜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눈에 비춰지는 것만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무엇이 진짜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진짜인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이다. 요즘처럼 무엇이 옳고 무엇이 참된 것인가를 가리기 어려운 시대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윤리와 전통이 해묵은 것으로 여겨지고 쾌락과 자유가 우리 삶의 가장 유일한 기준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가짜에 속고 있으며 가짜를 진짜인양 착각하고 있다. 건강한 것이 자신의 육체적 능력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재산을 많이 이루어 놓은 것을 자신의 사회적 능력이라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 가정에 평안이 계속된 것을 자신이 가정에 충실한 결과라고 착각하며, 그 동안 맺어온 사람과의 관계가 자신의 친화력 때문이라고 착각하면서 산다.
당대의 가장 강한 나라 바벨론 제국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권세와 능력이 이를 건설하였다고 생각한 느브갓네살 왕은 이런 착각의 대표적인 예이다. 느브갓네살의 교만에 대하여 하나님은 꿈을 통해 경고하셨다. 그리고 바벨론 제국의 평안과 평안이 장구(長久) 하려면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고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이 주관자 되심을 인정하고 찬양해야 한다고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 질책하셨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임을 인정하는 것만이 우리를 착각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동굴 밖을 나가 보지 않고는 참 진리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듯이 우리는 우리에게로 향했던 눈과 귀를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으면 우리의 착각을 벗어날 수 없다. 귀와 눈이 하나님을 듣고 보게 될 때 비로소 인생의 그림자가 빛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비춰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것을 아는 순간이 바로 하나님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순간이다.
Sunday, October 24, 2010
Subscribe to:
Post Comments (Atom)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