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강경파에 둘러싸인 수령 연기자일뿐
장성택 처형을 통해 본 김정은 정권의 변화
북한은 이번에 장성택 처리과정을 통해 김정일 때와 달라진 김정은 정권의 변화를 노출시켰다. 김정일 때와 다른 현 김정은 체제의 변화 10가지를 분석한다.
1. '곁가지'견제에서 '곁가지'제거
장성택은 평생 '곁가지'였다. 나무가 곧게 자라자면 곁가지를 잘라줘야 한다는 의미에서 김정일은 유일지도체제 확립 명목으로 당 조직지도부 내규에 '곁가지' 견제 원칙을 못 박았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장성택은 김정일 정권에서도 2번이나 해임되거나 혁명화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제재는 수령 일가 존중 차원에서 당 내부적으로만 조용히 진행되었을 뿐, 김정은처럼 수령 일가의 신격화에 치명적 훼손을 당하면서까지 인민의 적으로 정면에서 잔인하게 쳐내지 않았다. 장성택이 그 정도로 불편했다면 차라리 조용히 암살하는 편이 더 나았을텐데 김정은은 왜 그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왜 지금껏 철저히 비공개적이었던 '곁가지' 견제원칙을 깨고 공개적인 '곁가지' 제거로 돌변한 것일까?
그 비공개와 공개의 차이는 곧 김정일과 김정은의 권력장악력 차이다. 즉 권력 자신감이 충만했던 김정일의 시대에서는 '곁가지'를 견제하면 그만이었지만, 김정은 정권에서는 '곁가지'를 아예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유일지도권한이 초조해서이다.
북한은 수령만이 아니라 특권층도 함께 세습된다. 장성택을 일당이라고 표현했는데 다름아닌 김정은의 일당이 더 두려워했다는 반증이다.
2. 유일영도체계 과정은 대외보도가 최선이고 대내보도는 차선
김정일 때에는 유일영도체계와 관련한 중대사안은 내부적으로 말끔히 정리하고, 그 결집력을 대외에 과시하는 형태였다. 아니 김정일의 유일 신격화 영도체계를 일관하게 강조하기 위해 내부 숙청은 철저히 은폐시키고 대외에는 일절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했었다.
그랬던 북한이 이번 장성택 숙청은 대외통신인 조선중앙통신사에서 먼저 내보내고 내부선전 기구인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에서는 그 다음날에야 보도했다. 더구나 다른 간부도 아닌 현 지도자의 고모부와 그 일당을 숙청하는 패륜적인 거사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엄청난 내부고발을 밖에서부터 버젓이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북한의 주장은 김정은의 유일지도 권위에 도전했기 때문에 그가 누구든 가차없이 제거했다는 과시이다. 그런데 여기에 근본적 모순이 있다. 그런 반역을 남이 아닌 김정은의 고모부가 감행했다 것. 이는 신격화 불신을 자인한 것이다.
그래서 대외적인 홍보가 대내적인 선전보다 더 절박했다는 것인데, 그 발상 자체가 김정은의 유일영도체계에 대해 아직 설명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고발한 셈이다. 즉 김정은의 정치적 지위에 치명타를 주면서까지 다른 일당이 결집해 장성택 일당을 숙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정치국회의는 곧 유일영도가 아니라 집단권력 정치를 의미
북한에서 최고권력 집행기구라고도 볼 수 있는 정치국회의가 사라진 것은 김정일이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명목으로 당조직비서 유일지도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한 1980년대 중반부터이다. 인사권과 당 조직지도권한은 물론 제의서나 비준제도를 통해 북한 내 모든 권력을 빈틈없이 장악한 김정일이어서 사실상 당대회나 정치국회의 같은 형식적인 집단지도체제는 실종됐다.
김정일은 자기 발언 자체가 곧 국법이 되도록 당 조직지도부를 대체권력으로 내세워 합의권력을 무시한 독단적 명령지도체제로 개인정치를 했다. 그렇게 유명무실했던 정치국회의가 부활한 것은 김정일 정권 말기부터이다. 그때는 김정은에게로의 권력이양을 합법화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정치국회의가 이영호 숙청 건이나 장성택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 임명통과와 같이 중요한 역할과 실제적 기능을 갖게 된 것은 김정은정권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이번 장성택 구속도 정치국회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비록 김정은이 높은 연단의 맨 중심에 앉아있긴 했지만 중대한 사안 때마다 정치국회의 형식을 빌려 결과를 발표한다는 것은 김정은에게 김정일의 개인적 명령지도체계와 같은 권력자신감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다. 때문에 정치국회의는 김정은의 유일영도가 아니라 권력그룹의 영도를 의미한다.
4, 정치국 회의 사진에는 김정은의 절대적 유일영도가 없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사가 공개한 정치국회의 사진을 보면 간부들이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것도 지명된 한 사람이 아니라 4인이 동시에 들고 있다. 똑같은 질문 내용에 포함된 4인의 동시 반응일 수도 있지만 어떤 확인 절차를 위해 묻고 답하는 장면인 것만은 틀림없다. 혹은 연단에서의 유도 질문에 4인이 동시에 저마다 발언을 요구하는 손으로도 보인다.
김정일 때에는 김정일이 참석하는 간부회의란 결과의 법적 강제성을 보다 강조하기 위한 형식일 뿐이었다. 지도자의 위대한 영도를 높이 모신 연단을 향해 누구든 감히 손을 들고 발언권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구태여 객석을 향해 질문하는 불필요한 절차란 있을 수도 없었다. 순종에 훈련된 북한 간부들이기도 해서 저마다 대답하겠다고 손을 들 담력도 없었다.
달라진 정치국 회의 분위기는 그 뿐만이 아니다. 김정일이 연단에 앉아있는 회의에서는 간부들이 함부로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거나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뗄 수가 없다. 노트에 손으로 뭘 써야 할 때에는 똑같이 쓰고 귀로 들어야 할 때에는 하나같은 정자세여야 한다.그것은 최고 권위를 모시는 북한 간부들의 양심의 자세이기도 하다.
김정일의 눈에 한 번 잘못 찍히면 다음날 아침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눈의 동공조차 굳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정은의 정치국 회의에서는 듣는 사람, 쓰는 사람, 몸을 돌리는 사람 등 제각각이다. 김정은의 유일영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회의 주제에만 집중하는 현 북한 핵심권력층들의 과감해진 배짱과 담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고발사진인 것이다.
5, 정치국 회의를 며칠 앞 둔 김정은의 평양이탈
장성택의 행위가 북한의 발표대로 그렇듯 엄중한 반당 반혁명적 종파행위였다면 장성택 구속을 결정하는 심각한 정치국회의를 며칠 앞둔 11월 말 김정은은 평양을 이탈하여 추운 북방의 먼 삼지연 지역에 가 있어선 안 된다. 김정일이라면 평양에서 장성택 일당의 소탕작전을 선두 지휘했을 것이고, 그 전에 벌써 장성택을 직접 호출하여 정치국회의 따위의 절차는 필요 없이 수갑을 채우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평양을 이탈하여 삼지연으로 갔고, 조선중앙TV는 11월 30일 이를 현지시찰 관행으로만 보도했다. 장성택 실각을 국정원이 공개 발표한 날짜는 12월 3일이다. 국정원이 다른 문제도 아닌 장성택 실각과 같은 심중한 발표를 당일첩보로 무책임하게 공개할 수 없다. 정보부서의 명운이 걸려있기 때문에 최소 일주일 이상 이중삼중의 확인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설정을 전제로 추론해 본다면 장성택 실각은 이미 11월 23일 경에 벌어진 사건으로 가정해볼 수 있다, 쿠바와 말레이시아에 나가있던 장성택의 친인척들을 평양으로 소환한 시점도 바로 그때이다. 또한 그때는 이미 장성택 최 측근들인 리룡화, 장수길이 공개처형 된 뒤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삼지연으로 간 11월 30일 이전 시점은 평양에서 장성택이 실각되어 가택연금 된 상황에서 그의 측근들을 숙청하는 살벌한 작업이 한참 벌어질 때라고 봐야 한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삼지연에서 장성택 해임을 결정하는 회의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장성택 실각과 맥을 잇는 친인척 소환시점에서 탈선하는 주장이다. 그리고 굳이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그 북방의 한 끝에서 회의를 할 이유도 없다. 김정은은 무엇이 두려워서 평양을 이탈했을까? 혹시 김정은과 장성택을 떼어놓기 위해 멀리 삼지연으로 옮겨 놓은 배후세력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6, 객석 절반이 비워진 것은 김정은 신격화 공백
북한이 공개한 정치국 회의 사진에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 메시지가 있다. 객석이 절반이나 비워진 것이다. 김정일 때에는 지도자를 모시는 회의는 어떤 주제이든 사소한 것까지 무조건 완벽해야 한다. 빈 자리란 있을 수 없고, 더구나 그런 절반 짜리 회의장면을 대외에 노출시킬 수 없다.
참석인원 규모에 맞는 회의실을 선택하던가, 그 어떤 결정이든 전체 인민의 지지와 찬성을 조작하기 위해서라도 객석을 모두 채운다. 그런데 장성택 구속을 결정짓는 정치국 회의실에는 앞 부분만 채워져 있고, 뒤 부분은 텅 비어있다. 최고위급 간부들로 한정된 회의라면 더 문제가 된다. 그 공개가 곧 북한 정권의 현 권력내부지도의 비밀을 고스란히 외부에 누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성택을 제거하는 정치국회의는 왜 절반의 객석만 채워져 있을까? 또 북한 정권은 현 핵심권력 인물들을 외부에 모두 공개하면서까지 이를 정당화하려고 했을까? 왜 김정일을 신으로 절대화했던 전통적인 회의규율과 원칙을 지킬 여유도 없이 김정은의 정치국 회의는 장성택 숙청을 서둘렀을까?
그 결론은 이렇게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최고위급들에게만 한정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장성택 온건파 일당의 숙청을 주도한 강경파세력의 과시용이다.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정책의 한 측이었던 장성택 일당의 온건파를 지워낸 흔적이고, 그 조급함과 은밀함, 결집력만 계산했지, 김정은 따위의 신격화 절대주의는 텅 빈 객석 뒷편으로 미루어 놓은 강경파의 위세이다.
10. 장성택 숙청 뒤에 부각된 김정은의 유일영도
7. 장성택의 여성문제까지 공개한 것은 김경희에 대한 도전
조선중앙통신사가 보도한 정치국 회의 결정에는 장성택의 부화방탕한 사생활까지 거론된다. 외부에선 김경희와 장성택의 사이가 이미 전부터 좋지 않았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선 수령 뿐 아니라 친인척의 존재는 물론 사생활을 발설하는 것 자체가 엄격한 불법이다.
외부의 시각에서 보면 치졸한 처형방식이라고 비웃을 수 있겠지만 북한 주민들에겐 유례없는 충격이다. 김정일의 누이인 김경희가 그 정도로 무시되는 초라한 여자였는가? 수령은 절대 신인데 친인척들은 인간 이하로 타락했었단 말인가? 하는 강한 의문과 함께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김정은의 정치국 회의는 그렇듯 감히 거론돼서도 안 될 수령 가문의 성역까지 침범하며 장성택의 흠집 내기에 최선을 다했다. 장성택의 반당 반혁명적 범죄까지는 수령 일가에서 영원히 제거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여자 문제를 거론한 것은 김경희의 명예도 동시에 빼앗는 극도의 모독이고 경멸이다.
북한 간부들은 식솔 중 한 명이 죄를 지어도 가족교양에 소홀했다는 죄를 물어 가족혁명화 명목으로 해임 처벌을 받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김정은의 유일영도체제가 아니라 강경파 세력의 쿠데타 야망이 더 절실해서 김경희의 인격까지 함께 묻어버린 정치국 회의 결과라고 밖에 달리 볼 수 없는 대목이다.
8.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은의 발언은 왜 빠졌나?
장성택 숙청을 결정한 정치국 확대회의 보도에는 첫 머리에 '김정은 동지께서 정치국 확대 회의를 지도하시였다.'고 했다. 그러나 확대회의 과정이나 장성택 숙청을 결정하는 마지막 설명에서도 김정은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다. 아버지 김정일 정권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해괴한 회의 마감이다.
김정일을 모셨던 회의들에서는 '위대한 지도'로부터 시작하여 끝날 때도 반드시 무엇이든 천재인 김정일의 '위대한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이번 정치국 확대 회의에서는 신격화의 시작만 있고 끝은 없었다. 마치 마네킹을 옮겨 놓은 듯 김정은이 참석했다는 전제만 있지, 장성택의 반당 반혁명적 행위에 대한 지도자의 '대노'나 향후 당의 순결성과 단결을 강조하는 현명한 '지침'은 아예 없다.
장성택의 여자문제까지 모두 공개한 통 큰 정치국 확대회의에 비하면 김정은의 유일적 존재가 너무 미약하다. 김정은이 정말로 고모부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면 누구보다 많은 말로 흥분했을 것이고, 그 대단한 권위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조선중앙통신사는 사진들을 남발했을 텐데 말이다. 김정은은 자기의 정면에서 고모부가 체포되어 끌려나갈 때 그 사악한 무리들에게 포위된 제 처지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9. 장성택의 조잡한 죄명은 곧 김정은 신격화 권력의 불안
조선중앙통신사가 보도한 장성택의 죄명에는 역사상 북한 간부들에게 들씌울 수 있는 모든 범죄와 모독이 포함돼 있다. 김정은의 권위를 지키는데는 사실 그렇게까지 많은 증거가 필요치 않은데도 말이다. 왜냐하면 지도자의 유일적 영도는 당연한 것이고 또 그 원칙의 잣대로 아버지 김정일처럼 단호하게 처단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치도 누구를 설득하려거나 강압하기 위한 증거물처럼 장성택의 죄명은 장황하다 못해 조잡하기짝이 없었다. 그래서 그 문구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불안하게 시작하고 이어진 김정은 3대 세습과정이 그대로 읽힌다.
장성택의 죄명은 '분파책동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감히 당에 도전해 나서는 위험천만한 반당반혁명적 종파사건이 발생하였다.'로 시작된다.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분파책동' 용어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충신들은 왜 처음부터 장성택의 분파행위를 견제하지 않았나? 김정은의 고모부여서?
정작 그 고모부를 숙청할 때에는 신속한 결집력과 잔인함까지 보여준 그들인데 왜 장성택이 '제도보위, 정책보위, 인민보위에 엄중한 해독적 후과를 끼치고', '국가재정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게 하고,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헐값에 팔아버리는 매국노'가 될 때까지 사전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 자체가 직무유기를 넘어 똑같은 유일영도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장성택이 김정은의 유일영도체제에서 탈선한 분파였다면 그에 반하는 또다른 분파가 결집하여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해석으로 밖에 안 된다. 그런 갈등의 분파여서 김정은이 고모부와 함께 현지시찰을 하는 그 뒤에서 '오래전부터 알고 주시'했고, 또한 '더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어 장성택을 제거'하는 거사를 '우리의 영원한 영도자이신 김정일동지 서거 3년상'의 계기에 맞춰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쿠데타 식으로 벌인 것이다.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 노동신문과 공개매체들은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체제를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나섰다. 누구도 그 세습지위를 의심하거나, 부정하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무엇보다 가관은 어제까지만 해도 지도자의 고모부였던 장성택을 향해 일반 주민들의 분노까지 동원한 점이다.
정치국 확대회의에서의 숙청을 굳이 사회적인 숙청으로 확대하고 민심의 대못까지 박는 그 이유가 무엇인가? 김정은에게 도전하면 그가 누구든 가차없이 처형한다는 과시용 치고 너무 막나가지 않나 싶다. 김정은의 유일지도체제란 본질적으로 절대적인 신격화권위이다.
정말로 김정은의 충신들이라면 그 신격화 권위의 절대화를 위해 지도자의 고모부가 숙청의 극한에 몰릴 때까지 수수방관해서도 안되고 결말도 조용히 처리해야 정상이다. 설사 철없는 김정은이 지시하고, 바람피우는 남편에 대해 김경희가 야단쳐도 신격화 명분과 존엄부터 우선 계산할 줄 아는 이성의 집단이 됐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국 확대회의 결정서에는 '장성택과 그 추종자들은 우리 당의 조직적 의사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당의 조직적 의사인 당의 노선과 정책'이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김정일 때에는 당의 노선과 정책을 말할 때에는 반드시 그 앞의 수식어로 '위대한 영도자'가 강조된다.
김정일의 선전부는 '당의 조직적 의사인 당의 노선과 정책'이라는 식으로 수령의 유일영도가 생략된 당의 노선과 정책을 말하지 않았다. '당의 조직적 의사'란 표현은 전체적 관점에서 찬성과 투표를 할 때에만 주로 사용됐다. 그렇다면 오늘날 김정은 정권에서 '당의 조직적 의사'란 강경파가 결집한 의사라는 뜻인지, 그래서 김정은도 그 무리의 노동당에 굴복하여 고모부가 비참하게 끌려나가는 뒷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장성택 숙청을 통해 본 김정은 정권의 변화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김정은은 강경파에 둘러싸인 수령 연기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강경파는 살아있는 김정은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안정적인 권력과 명분을 정당화시켜 줄 죽은 김정일의 유훈 통치로 북한을 지배하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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