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영화로 기억이 됩니다. [미션]이라는 영화에는 두 사람의 신부가 나옵니다. 남미의 과라니라는 원주민 촌에 선교사로 들어가 저들과 더불어 살며 섬기고 있는 본당 신부 가브리엘과 노예상인 출신으로 살인을 저지른 후 참회의 길을 가기 위해 신부의 길로 들어선 보좌 신부 멘도자입니다.
브라질 이과수아 폭포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참으로 맑은 영혼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원주민 과라니 부족을 배경으로 한 실제 있었던 일을 영화화 한것입니다. 당시 세계 여러민족들을 식민지로 점령해 가던 포르투칼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그리고 파라구아이 세 나라의 접경지역이었던 이 평화로운 원주민 마을을 손에 넣기 위해서 무자비한 공격을 시작합니다.
총과 칼을 앞세운 포루투칼 군인의 침략 앞에 대응 그 방식을 두고 가브리엘 신부와 멘도자 신부의 의견이 갈라집니다. 노예상인 출신으로 살인까지 저지를 정도로 성격이 과격했던 보좌 신부 멘도자는 칼을 빼어 들고 저들과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성당의 책임자였던 본당 신부 가브리엘은 흥분한 보좌 신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힘이 정의라면 사랑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고 가브리엘 신부는 십자가를 들고 행진을 합니다. 결국 신부와 과라니 부족의 원주민들은 거기서 전멸을 하고 맙니다.
무엇이 하나님이 원하셨던 선택이었을까요? 멘도자 신부의 선택을 하나님이 원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가브리엘 신부의 선택을 하나님이 원하신 것일까요? 성경은 이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대답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상황 앞에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공통된 열쇠는 정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2: 44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10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5:22에서 사랑은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모든 은사 중에 가장 중요한 은사가 사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 볼 때,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한가지는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바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구체적으로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결정해 나갈 때 늘 붙들어야 할 유일한 기준입니다.
우리도 라과니 마을의 신부들 처럼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연 구체적으로 이 계약서에 내가 사인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몰라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가 늘 다시금 점검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사랑의 역사를 내가 시작할 수 있는가? 입니다. 이 일이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일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점검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을 기뻐하시며 그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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