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이 강도짓을 하는 것인가? 그것은 사람을 더 이상 존귀한 대상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강도에게 있어서 인간은 섬기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용해야 할 대상이다. 오래전에 한국에서 탈옥한 죄수가 권총 강도짓을 하다가 잡힌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가 되버린 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기에 그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 강도짓을 했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울분과 분노로 가득찬 그는 더이상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분노와 억울함을 해소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대상 가운데 수단으로 이용해야 할 대상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그것은 오직 물질뿐이다. 나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이웃은, 섬기며 살아가라고 주신 사랑의 대상이다. 강도들은 이것을 망각한 것이다. 강도들은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고 물질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 의미에서 백성을 섬기고 사랑하지 못한체 자신의 탐욕과 정권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독재자들이 강도이며,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위해 백성들의 아픔과 어려움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탐관오리들이 강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강도의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의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어떤 사람을 섬겨야 할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나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순간부터, 내가 그 강도의 모습일 수가 있다. 총이나 칼을 들고 목숨을 빼앗거나 남의 소중한 물건을 강탈하는 자만이 강도가 아니다. 강도는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으로부터 내게 어떤 이익이 올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보는 강도일 뿐이다.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사람을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요청하셨다.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면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이를 행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영생을 얻은 자라면 이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영생을 얻어 주님의 백성이 된 자들은 사람을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북한의 문제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맡기신 것이 아닌가? 북한의 김정일과 그 권력자들은 인간을 목적으로 대할 생각이 없는 자들이다. 저들의 관심과 생각은 권력세습과 물질적 탐닉에만 있다. 저들은 이를 위해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는 자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역사를 맡기지 아니하신다. 역사는 사람을 목적으로 여기는 자들에 의하여 진행되어 왔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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